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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Dec 26. 2020

너의 행복에 나는 불안하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연애 5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내 편'의 존재는 참 크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홀로 태어나 외로운 와중에 다가오는 '내 편'이기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편에 선다면 그 사람의 좋은 일에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어야 하고, 나쁜 일에는 선뜻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안녕을 기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내가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혹여 못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진 않을까 걱정이 되고, 나쁜 일이 생기면 힘들다며 나를 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는 사람이 싫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지만, 혼자서 생활하는 것 또한 불안하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품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내 불안한 감정을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좋겠다.

남자 친구가 취직을 하고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얼굴 보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아 매일마다 꼭 영상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남자 친구가 피곤했는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에는 남자 친구는 친구들이랑 게임을 하느라고 나랑 연락을 제대로 못했다. 잠들기 직전에서야 나랑 통화를 겨우 하다가 곧장 끊으려고 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눈물이 왈칵 났다. 


나는 이렇게 기다리고, 나는 이렇게 너만 보고 있는데, 그에겐 말고도 기댈 수 있는 곳이 있고 즐길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게 슬펐다. 내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싶어서 눈물이 계속 흐르기만 했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나는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보고 싶은데 보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했다. 옆에 그가 없으니 나는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를 보고 있을 때 나는 가장 많이 웃는다. 그를 보러 갈 땐 가슴이 떨린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순간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남자 친구가 보고 싶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니까, 보고 싶다. 


내가 부리는 응석에 그는 '나 없이도 잘 지내야 하는데 왜 우느냐' 고 했다. 그 말이 시발점이 되어 나는 섭섭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 없이도 잘 지내는 그를 보며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남을 믿지 못하면서도 의존하려는 내 습성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더 싫다. 나를 잘 타일러 보는 그한테서 섭섭한 감정만을 느끼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애정이 나에게 쏟아졌으면 좋겠다. 차라리 네가 괜찮지 않아서 나한테 더 의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즐겁기 때문에, 나는 그것만을 기다리며 한 주를 버티고, 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그는 그가 없이도 내가 잘 지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나에게 연인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는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겨우 한 숨 한 숨 겨우 쉬어지는 호흡을 붙잡으며 사는 이유가 그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다. 문득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더 위로를 받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내가 이렇게 아프고, 내가 이렇게 상처 입었으니 나를 보듬어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털어놓는 순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에게 너무나 큰 굴레를 씌우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을 추스르며, 이틀 동안 연락이 제대로 안 돼서 슬펐다고 했다.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많이 보고 싶다고 다시 이야기했다.


그도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고 내일은 꼭 전화를 먼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나에게 연락을 잘해줬다. 그 뒤로 그는 연락으로 날 섭섭하게 한 적이 없다. 미안하다고 하고 곧장 행동을 고치는 그를 보며 그도 날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안심했다.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언제쯤 나도 건강해져서, 나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 혼자서도 오롯이 잘 지낼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된다면, 이렇게 의존적이지도 목매지도 이기적으로 굴지도 않을 텐데.


정말로 건강한 연애를 하는 사람은 연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그만큼 건강한 정신이 필요로 하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한 그를 보면서 불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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