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Nov 05. 2020

우울증 약물 치료, 계기와 시작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일지01

다은 글은 작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아주 옛날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 `죽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운 것은 10살,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학교에서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루드베키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나는 루드베키아 앞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에 내 목을 걸어버리면 죽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내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10층짜리 복도형 아파트로 이사하였고 나는 울타리에 목을 거는 생각 대신 아파트에 들어서면 집이 아닌 맨 위층으로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보며 떨어지면 죽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천력이 부족했던 나는 여태까지 살아있고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끔찍하고 나는 세상이 더는 궁금하지 않다. 느껴볼 감정은 다 느껴봤고 더 이상의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남은 삶이 아무리 즐겁고 행복하다고 해도 더 이상은 다른 일들을 겪어보고 싶지 않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 삶이 주어진 것이 원망스러우며 태어난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죽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들은 내 고통을 알아주지 못한 방관자에 불과하고, 나는 그들에게 내 마음 한 번 터놓을 수 없었으며 내가 그들을 위해서 살아 있을 이유는 없다.

나의 우울증의 주 요인이었던 가족들은 내가 어른이 되면서 내가 내 입에 넣을 밥을 혼자 마련할 능력이 되니, 더 나은 경제적인 상황에서 생활 중이고 다들 인제야 서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 하나 터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했으면서, 항상 방 한구석에 언제든지 집을 나갈 수 있도록 짐을 싸놓는 사람이 되게 했으면서, 언제든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아득바득 돈을 모으게 했으면서, 먹고살 만해지니 뒤를 돌아보는 그들이 나는 원망스럽고, 끊어낼 수 없는 천륜이 원망스럽다.

여태 우울한 그 감정은 날 좀 갉아먹는 자괴감과 파괴적인 성향으로 찾아왔다. 내가 무엇인가 원하는데, 그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거기에서 오는 분노에 휩싸여 지냈다. 나는 항상 모든 것에 화나 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삶이 비참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밖에 지낼 수 없을까` `다들 나한테 왜 그럴까?` 등등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우울함은 여전했지만 더는 화나지 않았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나를 덮쳐왔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고 그저 우울했다.


나는 항상 오늘 하루도 살아있었다는 비참함에 울면서 잠들었고 오늘 하루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괴로움에 울면서 깨어났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기분이 나쁘고 화나지 않았다. 그냥 그저 매우 우울했다. 돈을 벌면서도 우울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학력의 전문직을 가졌음에도 우울했고, 아득바득 모아둔 돈이 또래 아이들보다 적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우울했다. 여름에 더운 것을 몰랐고 겨울엔 추운 것을 몰랐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세상엔 나의 우울함만이 남아있었다.

가장 비참했던 사실은, 나는 항상 `괜찮은`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점이다. 남들처럼 돈을 쓸 줄 알고 남들처럼 웃을 줄 알고 남들처럼 여기저기 친구도 있고 말하기 편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밝은 척을 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 각종 시사상식을 익히고, 모나고 여기저기 상처 받은 내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지 않았고, 내 약점을 꺼내어 보여주지 않았다. 아예 그런 것이 없는 잘 자라고 밝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23살쯤에 깨달았다. `아 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없구나`라고. 사랑받으면서 둥글고 원만하게 자라온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우울했다.

우울증이 내 마음을 좀먹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치료의지가 없었다. 치료하더라도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내 과거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미래를 꿈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버려 뒀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싫었다. 내가 공개하지 않는 이상 나의 진료기록이 만천하에 드러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아무런 가구도 없는 자취방에 혼자 누워 자다 일어나고 자다 일어나며 무기력하게 생활 중이었다. 어느 날부터 책이 읽히지 않았다. 활자가 읽히지 않았는데 카톡 같은 짧은 글은 읽을 수 있었다. 책을 펼치면 단어가 조잡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고 내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나는 내 평생 잘할 수 있는 게 공부였고 책을 읽는 거였다. 이젠 책마저 읽을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했고,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 간 병원에서는 "왜 우울하냐"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사실 잘 알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꺼내서 알려주기가 싫은 걸지도 모른다. `예전에 부모님이 나한테 한 일들 때문에?` `내 유년시절 때문에?`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20여 년 전에 머무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우울하긴 하지만 그때 생각을 계속하며 우울한 건 아니니까. "잘 모르겠어요. 글자가 안 읽혀요."라고 대답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업 가져놓고 왜 우울해해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서 가지게 된 직업인데 더 나아지지 않는 걸 왜 저한테 물어보는 건가요? 대답은 그냥 `잘 모르겠어요.`였지만. 그 날 나는 인지도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약을 일주일 치 처방받아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가지 않았다.

한 달 뒤, 집 근처에 초진 하려면 무조건 예약을 해야 하는 병원에 예약했다. 종이 뭉치를 주면서 이걸로 확진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될 거라면서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생각나는 대로 표시해서 드렸다. 언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물어봤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다는 아니고, 그냥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말들만 했다. 아주 심한 우울증이며, 우울증이 심화할수록 아예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약을 장기적으로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원장님이 내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시는 것은 아니다. 내 기분과 생각에 대해 큰 상담은 하지 않는다. 내가 꺼내어서 이야기하기가 싫어서인 것도 있고, 돌아올 대답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의사를 탓할 순 없다. 그들에겐 정해진 프로토콜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바뀌어야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우울증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내 밑바닥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이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원장님께선 병원에 여러 권의 책이 갖춰져 있다. 자주 오셔서 읽다가 가시라고 하셨다. 몇 페이지 넘겨봤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실용서적은 정말 내 취향은 아니구나고 생각했다. 혜민 스님께 약간의 죄송함을 느꼈다.

약의 도움은 크다. 내가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갖게 해 주었고, 밤낮으로 울던 것을 멈추게 해 주었다. 나아지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내 욕심도 같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겠지만, 이렇게 가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처음인 거 같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아주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내 기분을 조절해주더라도, 나 자신은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글을 끝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다. 시시껄렁한 이야기 말고, 내 마음과 내 경험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 최근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복약한 지 이제 6개월 차인데 내가 한심한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어서 그냥 죽고 싶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여기에 내 근황과 내 치료와 내 생각들을 끄적여 보고자 한다. 힘내라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는 아니다. 나는 그냥 힘을 내지 않아도 평안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그냥 내 생각을 정리해 놓고 싶을 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