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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Apr 13. 2021

살아계셔야 할 이유가 있나 봐요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


자살기도를 했다. 여태 여러 번의 자살기도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원래 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죽고 싶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단순히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적이 없는 나는, 하고 싶은 것 도 하지 못한 채 자랐다. 불행했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 사회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불현듯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내 죽음만이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죽어서 이 무기력한 삶이 끝난다면 나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나는 공황장애가 왔을 때 비상용으로 먹을 진정제를 다 뜯어서 한 움큼 먹었다.


작년 추석 즈음에도 자살기도를 했다. 그때는 수면제를 5알 정도 복용했다. 작은 주황색 알약을 삼키며 나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죽는구나. 삶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허무하다. 생각했다. 약 한 알 한 알 삼키는 게 힘들어서 헛구역질을 했다.


이번엔 달랐다. 스무 알이 넘는 약을 삼키며 드디어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는구나. 싶었다. 유난히 어두운 길을 걸어온 내 인생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구나. 싶었다. 그때처럼 힘들지 않았다. 약은 수월하게 내 몸을 타고 흘렀다. 내가 죽어서 슬퍼할 사람들의 얼굴도 몇몇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 있으면 그들도 괜찮아지겠지, 반성을 하고 나 같은 사람이 더 생기지 않게 다른 사람을 대하겠지. 생각했다.


기분 좋은 향기가 나도록 새로 빨래를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약기운에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나는 다음날 깨어났다.


다음날 눈을 뜨고 약기운에 몽롱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과, 죽지 않았으면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준비를 마쳐 일을 하러 갔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계속 실수를 했고 약물을 과다 복용한 부작용인지 얼굴이 노랗게 동동 떴다. 다른 직원분들이 얼른 퇴근을 하라고 하셨고 나는 오후 두 시에 회사에서 나왔다.


내 자살기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진정 용도로 먹는 고혈압 약의 일종을 한 줌 먹고 잠에 들었다. 이번에도 약은 쉽게 넘어갔다. 내 인생의 끝이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드디어 이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는구나. 하지만 다음 날에도 눈이 떠졌다.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괴로웠다. 살아있음이 괴로웠다.


그 날 일을 하면서 계속 실수를 했다. 내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과장님은 나를 직접 기숙사까지 바래다주셨다. 병원에 꼭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선 입원 치료를 하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입원 치료를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통원 치료를 한 이유는, 내가 진료에 협조적이고 의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를 악용하여 자살기도를 했다는 것을 아신 담당의는 입원을 권고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환경이 좋은 편이다. 병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병가를 낸다면 내 진료 내역까지 낱낱이 공개되기 때문에 외상이 아니고서야 병가를 쉽사리 낼 수 없다. 그래서 병가를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원 진료를 하게 되면, 입원하고 나서 마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을까 봐 무서웠다.


그렇다면 내원 주기를 줄이고, 집에 보관하고 있는 여분의 약을 모두 버리고, 간수치와 신장 수치 검사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내과에 갔다. 내과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원장님이 자신이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대단하게 잘 살아오셨다고 해주셨다. 그냥 인사치레이겠거니 했다. 피를 뽑고 혈액 검사를 했다. 사나흘 동안 100알이 넘는 약을 먹었는데도 간수치와 신장 수치는 정상이었다.

ㅇㅇ씨가 아직 하셔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나 보네요. 간수치며 신장 수치며 지극히 정상이에요. 살아있으셔야 할 이유가 있나 봐요.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누군가 말해줬다. 수화기 너머로도 내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날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그토록 죽고 싶었는데, 내 몸은 죽고 싶지 않았나 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유서를 남긴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멀쩡히 살아서 출근을 했다. 아직까지 정신이 조금 몽롱해서 정상 같지 않다고 동료들은 걱정하지만, 오늘의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나 때문에 걱정했을 사람들에게도 따로 연락을 해 나는 괜찮다고, 검사도 괜찮게 나왔다고, 오남용 할 수 있는 약들은 다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그토록 죽음을 원하는 내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누구보다 삶에 진심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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