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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처음 맥주를 마셨을까?

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29

우리는 언제 처음 맥주를 마셨을까?        

                                                           

빈 맥주병과 담뱃대를 들고 있는 모습 (출처 : 미상

  최근 맥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수입맥주 및 크레프트 맥주의 소비가 증가되고 그와 관련되어 주세도 2020년부터 종량세로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맥주는 우리가 만들어 먹던 술은 아니다. 우선 맥주용 보리(맥아)가 생산되지 않고 있기에 우리는 쌀을 기반으로한 술들을 만들어 마셨왔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맥주(麥酒)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제일 먼저 한자로 麥酒(맥주)가 나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중 영조 86권에 '맥주(麥酒)'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만드는 방식은 현재 우리가 먹는 맥주가 아닌 보리를 이용해 만든 탁약주 아니면 증류주로 예상된다. 


제일 먼저 한자로 麥酒(맥주)가 나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중 영조 86권에 '맥주(麥酒)'라는 단어가 등장         

 맥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로 추측된다.         

본격적인 맥주회사의 설립은 1933년 일본의 대일본 맥주 주식회사가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국내 최초의 맥주공장 (사진출처 : 1937년 조선총독부 조선신궁 어진좌 10주년 기념책자)


  현재의 맥주를 언제부터 마셨는지 정확히 기록된 바는 없지만 맥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로 추측된다. 일본의 경우 1877년에 자국에서 생산한 맥주 제품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개항 이후 서울과 개항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일본 맥주들이 흘러 들어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들어온 수입 맥주는 가격이 상당했기에 일본인 또는 조선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아사히 맥주 광고 (사진출처 : 한국디자인진흥원)


  개항 직후 일본과의 무역에서 이른바 무관세 무역(無關稅貿易)이 강요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무관세 무역이 근대 무역의 국제적 통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및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난 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883년 7월 25일 ‘조일통상장정 및 동 해관세칙’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 신문을 통한 맥주 단어의 최초 등장은 해관세칙(세관 규칙)을 적은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 자 기사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수입을 할 물건에 대한 세금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수입되는 주류에 대한 세금에 대한 내용을 적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자 (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화면 캡쳐)



번역
 제七, 음식물·煙草類(연초류)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일본 음식물·生氷菓(생빙과)·穀物(곡물)·穀粉(곡분)·된장·간장과 식초다.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소금·茶(차)·?肉(엄육)·?魚(엄어) 및 식료 통조림·국수·葛粉(갈분)·寒天菜(한천채)·낙화생·레먼수·生姜水(생강수)·曹達水(소다수) 및 각종 음료수·白(백)·黑糖(흑당)·蜜糖(밀당)·糖水(당수)·중국·일본의 酒類(주류)·林禽酒[능금주]·別項(별항)에 기록되지 않은 일체의 음식물류이다.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적·백 포도주·맥주다. 

이미 이 시기에 수입 주류에 세금을 부가할 정도로 조선에는 다양하고 많은 술이 수입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 맥주 역시 하나의 수입 주류였던 것이다. 


자료 출처 : 조선주조사 발췌


 이 시기에 수입 주류량이 기록된 것이 없다. 약 20년 이후의 조선주조사를 보면 1905년(광무 9년) 맥주의 수입량이 1,566kL였다. 1910년을 고비로 일본 맥주 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내면서 소비량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913년 전체 주류 총소비량 233,870kL 중 맥주의 소비(수입)량이 3,349kL로 1.4%를 차지했다. 1914년 3,483kL, 1915년 3,215kL로 증가하다가 1921년에는 청주보다 더 많은 수입을 하는 수입 주류가 되었다.탁약주 및 소주가 대부분이던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이러한 맥주의 주요 소비자는 일본인 또는 외국인이었으나 조선인이 소비하는 양도 적지 않았다고 하며 그 양도 계속 증가했다. 


자료 출처 : 조선주조사 발췌


 이러한 소비량 증가에 맞춰 본격적인 맥주회사의 설립은 1933년 일본의 대일본 맥주 주식회사가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뒤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역시 일본의 기린맥주 주식회사가 소화기린맥주(동양맥주의 전신)를 설립하였다.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 1934년 4월 이후로 맥주 수입은 감소하기 시작해서 1932년 5,955kL 였던 것이 1933년 4,546kL로 감소하였다. 이때의 조선의 처음 맥주 생산액은 2,933kL였다. 이것은 전체 조선 주류 생산량 385,882kL의 1.9%를 차지하는 것으로 지금의 맥주 소비량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이러한 자료들을 보면 조선 말기부터 맥주는 한국인의 입맛을 서서히 길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술보다 더 맛있는 술이야기 뉴스레터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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