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기억되는 길
길과의 인연을 얘기하려면 이전에 내가 했었던 일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의 화학연구소에서 석사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당시에는 인터넷과 웹브라우저라는 것이 생소하던 시기이다. 그저 PC통신이 대세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연구소에는 인터넷전용선이 항시 열려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World Wide Web)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란 직감으로 석사학위를 내려놓고 무작정 IT업계에 뛰어들었다. 나름의 감각으로 제휴마케팅과 웹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였지만, 준비되지않은 자에게는 혹독한 곳이 인터넷 세상이였다. 묻지마 투자가 유행처럼 번졌던 IT업계에서 회사가 무너지고 옮기고 하는것이 비일비재 했고 나또한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힘들어 했다.
10여 년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이바닥에서 오래동안 일을 할 수 있을까? 평생 직업이 가능할까? "
이 질문에 나는 스스로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평생 직업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몇 달을 고민을 하며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눈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은 것은 2007년 어느 방송에서 프랑스의 랑도네(Randonnee)와 변산마실길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접한것이다.
등산이 아닌 해안을따라,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루도 좋고 일주일도 좋은, 자기 스스로 코스를 정하고 다닐 수 있는 그러한 랑도네를 보며 내가 가야할 길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는 산지가 많으니 좋은 숲길이 많이 있을꺼야. 이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하면 어떨까? "
어찌보면 단순한 이생각이 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회사를 접고, 무작정 길을 찾아나서야 겠다는 생각으로 걷기와 관련된 동호회부터 찾았다. 그리고 많이 걷기만 했다. 걷기와 관련된 지도자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런데, 현실은 랑도네를 소개하는 방송과는 달리, 그저 땀을 내며 걷는 걷기운동이 전부였다. 길을 즐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에만 걷다가 낮에 사람들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숲길을 걷고싶어하는 욕구를 접하곤 했다.
결국, 나는 나름대로 걷기 좋은 골목과 풍경을 찾아 코스를 만들어야 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 당시 찾을 수 있는것이라고는 없었다. 제주 올레길도 아직 소개되지 전이였으니 말이다.
2008년 부터 도심걷기라는 주제로 서울과 경기권에 걷기 좋은길을 찾아다녔다. 정보가 막막하니 출사지로 유명한곳부터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더 넓게 서울의 산아래 숲길을 찾아 다녔다.
그냥 찾아다니기만 한게 아니라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고자 글을 쓰고, 워킹데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을 소개하려는 내 꿈에 한발짝 전진을 하였다.
단순히 길을 찾는것만 아니라, 좋았던 곳, 풍경이 멋진 곳은 카페회원들과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걷기모임을 진행하며, 여행코디네이터로써 기본을 시작하였다.
고민이 많았던 시기... 그 당시 랑도네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지못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본다. 과연 지금처럼 길을 찾는 일을 하고 있었을지, 아니면 계속 회사를 다녔을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은 아주 우연찮게 다가왔다.
길에서 길을 찾는, 랑도네가 내 인생의 길을 찾아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