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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Apr 30. 2024

여대생 마약도주 사건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한국 여자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하고 출국을 시도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수상해서 별도의 공간에서 여직원에게 몸수색을 받게 되자 생리 중이라며 수색을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브라와 팬티 안에서 합성대마 해시시가 적발되어 관계당국에 인계되었다. 직원에게 뇌물을 주겠다며 봐달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CCTV가 있어서 직원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적발된 마약의 양은 단순흡입 정도가 아니어서 기소가 된다면 중형이 예상되는 큰 범죄였다.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마약사범에는 무관용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체포불응이나 저항시 현장 사살 같은 일도 종종 일어나는 때라서 대사관에서는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출동했다.


공항 한 편의 마약단속국 PDEA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마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20대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이미 마약 테스트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녀는 호기심에서 사봤고 여행 중에 사용하고 남은 건데 버리는 걸 깜빡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었고 일단 기소가 되면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변호사 선임이 필요할 거라고 했더니 가족에게 연락해 봐야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난감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형사절차를 안내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녀는 조사를 마치고 마약단속국 사무실에서 임시 구금 후에 다음날 검사에게 인계되어 기소여부를 위한 심문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전화가 왔는데 그녀였다. 사무실에서 조용히 탈출했다고 한다. 수감 시설이 아니라 다소 보안이 허술했지만 그 와중에 압수된 여권까지 챙겨서 나왔다고 한다. 어제 면회를 하면서 유치장 안에 불을 끄면 무섭다고 하여 방 밖의 불을 켜고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기억이 났다.


즉시 영사에게 보고를 하니 당장 대사관으로 오라 하라고 했다. 그녀와 약속을 정하니 담당 영사는 위에 보고를 했는데 범죄자가 대사관 안에 들어오면 안 될 것 같다고 나에게 밖에서 만나라고 하더니 또 몇 분 후에는 만나지도 말고 그냥 자수를 권유하라고 했다. 대사관에서 자국민이라도 범죄자를 들이면 외교적인 분쟁의 생길 수 있단다.


그대로 이야기를 전달하니 그녀는 무척이나 실망한 기색이었다. 담당 영사도 그녀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내 전화만 받았다. 위치를 물어보니 공항 출국장 안 화장실이란다. 

어떻게 빠져나왔냐고 물으니 당직 직원들이 자길래 그냥 여권과 지갑을 들고 조용히 나왔단다.

믿어지진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뇌물이나 다른 방법을 썼을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공식적으로는 자수를 권유한다고 했고 자수를 원치 않으면 그냥 아무 비행기나 타고 빨리 출국을 하라고 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고 한국이나 홍콩같이 무비자로 방문 가능한 항공편이 자주 있는 곳으로 가되 신속하게 움직이라고 했다. 아직 기소도 되기 전이라 출국금지가 되었을 리는 없다.


다시 연락을 했을 때는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며칠 후에 확인한 바로는 무사히 한국에 입국을 했고 나중에 체포가 되어 조사와 처벌을 받았다. 그녀의 도주는 현지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되어 마약 단속국 직원들은 감시소홀로 해임 등 중징계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상사의 지시를 어긴 셈이 되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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