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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Apr 16. 2024

3천만 불을 찾는 부부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한국계 노부부가 대사관을 찾아와서 면담을 신청했다.

이들은 미국여권을 소지한 외국 국적자라서 원칙적으로 한국 대사관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조언이라도 달라고 요청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이 부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약 3천만 불에 달하는 거액을 퇴직연금으로 수령하게 되었는데 이 돈이 지금 필리핀 중앙은행에 예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거액을 받게 되었는지도 대답을 듣지 못했고 미국 국내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해외 계좌로 돈을 보낸 이유도 세금 문제일 거라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으며 그걸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시중은행이 아닌 중앙은행에서 그런 돈을 받을 수도 없는 법이다. 그들이 증거라고 보여준 것은 캡처된 계좌 잔고증명과 그걸 인쇄한 종이 한 장뿐이었다.


은행은 HSBC였는데 누가 봐도 조잡하게 만든 이미지였고 필리핀 중앙은행에 예치됐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받았단다. 조목조목 말이 안 되는 부분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대사관에서 나서서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미 HSBC 한국지점을 찾아갔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오죽 답답했으면 여기까지 찾아왔겠느냐고 하소연하는 노부부를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미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상태라서 어떤 얘기를 해주어도 듣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마도 남편은 사기인 것을 어렴풋이나마 눈치를 챈 것 같은데 아내가 너무 강경한 태도라서 별 말을 안 하는 눈치였다.


이미 수수료 명목으로 사기꾼에게 적잖은 돈을 보냈고 아마 여행경비도 꽤 들었을 것이다. 자식들도 설득을 하다가 포기한 것 같은데 이들의 여행은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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