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필리핀 사람들은 현지 경찰들을 '부아야 buaya'라는 멸칭으로 부르면서 조롱한다.
'악어'라는 뜻이다.
교통경찰들이 마치 악어들처럼 모여서 그냥 빈둥대고 있다가 먹이가 나타나면 잽싸게 나타나서
돈을 뜯어내는 게 마치 먹이를 물어뜯는 악어들과 같다는 것이다.
치안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경찰에게 이보다 더한 오명이 있겠냐마는 사실은 사실이다.
마약의 범람, 카지노 등 도박산업과 이를 둘러싼 수많은 범죄, 불법 사제 총기, 이슬람반군 테러,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생계형 범죄 등 열악한 사회 환경에서 치안과 사법제도는 비효율적이며
경찰도 그만큼 부패하여 거의 지배 계층의 이익만을 지킬 뿐이다.
현지경찰의 월급이라고 해야 실 수령액이 2~30만 원 선이라 월급만으로 생활자체가 어렵고
게다가 수사비가 없어서 수사를 하려면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서 움직여야 하고 무기력한 사법체계로 인해
사건 수사에는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돈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경찰이 직접 마약 거래와 납치 등 범죄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직 마약반 경찰관들에게 납치되어 경찰청 본청 주차장에서 살해당한 지익주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말 유례가 없는 기가 찬 일이다.
나는 말단 순경들부터 경찰청장까지 필리핀 경찰들을 누구보다 많이 만났기에 이들을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예산과 제도가 뒷받침되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변화가 요원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개중에는 사명감이 투철하고 선량한 시민과 약자를 보호하는 좋은 경찰들도 있지만
이러한 환경 안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면 물이 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필자가 어렸을 적을 기억해 보면 한국 경찰도 지금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통경찰 몇 년만 하면 집을 몇 채 산다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로 단속할 때 면허증 밑에 5천 원만 포개서
쥐어주면 그냥 보내주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던 우리 경찰은 개혁과 제도변화를 통해서 변화했다.
필리핀 서민들은 집에 도둑이 들거나 사고를 당해도 경찰을 믿지 못해서
신고조차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신고전화번호를 잘 모른다.
필리핀은 우리와 가깝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친절하다.
관광지나 대도시만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못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나라가 발전하고 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필리핀 경찰이 오명을 벗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지는 때가 오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