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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May 28. 2024

소개한 게 죄인가요?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이 모 씨는 이혼 후 필리핀에 건너와서 재혼으로 새 가정을 꾸려서 마닐라 인근 도시에서 살았다. 

처제도 한국의 지인에게 소개하여 한국으로 시집을 보내고 나니 주위에 소문이 나서 한국에서도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현지 동네 이웃이나 처가 친척들도 한국에 시집보내고 싶은 아가씨가 있다며 그에게 찾아오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딱히 하는 일이 없었던 그는 결혼절차에도 익숙해졌고 소일거리 삼아 중매도 해주고 용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생각 있으면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고 나름 매칭이 될만한 커플들을 골라서 필리핀에서 맞선을 보게 했는데 그에게 지원했던 아내의 먼 친척이자 필리핀 이웃 중 하나가 남자를 소개를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필리핀은 상업적인 결혼 중개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나라이다. 

Anti-Mail Order Spouse Act, 일명 우편주문 배우자 금지법은 한때 사문화된 법조항이라고 할 만큼 실생활에서 이를 위반하여 처벌받는 사례는 드물었지만 엄연히 법령이 존재하고 인신매매에 준하게 처벌도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걸 왜 법으로 막냐고 항의하겠지만 필리핀은 사정이 다르다. 

전 세계에 가정부와 노동자를 공급하는 것이 국가 주요 산업인 나라라 해외에서 자국민들이 인권침해 당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고 외국인들이 자국의 젊은 여자들을 마치 쇼핑하듯이 골라서 즉석으로 결혼을 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체포되었고 영리 목적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소개를 해준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지원서와 얼마간의 돈을 받았던 것이 증거로 제출되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오해가 있었을 뿐 별일 아니라며 변호사를 소개받았으니 곧 풀려날 것이라며 대사관의 도움이 필요가 없다고 하길래 사소한 사안이 아니니 보석신청을 하고 가능하면 보석 후에 즉시 출국을 권유했으나 그는 내가 집이 여기인데 어디를 가냐며 재판준비와 출석도 소홀히 하다가 15년 형이 확정되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게 거의 10년 전인데 아직도 수감생활 중이다. 

그는 다른 범죄로 들어온 여타 수감자와는 다르게 예의도 바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그를 볼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하다. 


분명히 모르고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몰랐다고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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