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필자는 테니스가 취미라 주말에 종종 동네 테니스장을 가는데
정식 코치는 스케줄이 바빠서 보통은 볼보이 출신 히팅 파트너들과 랠리를 주고받다 오고는 했다.
10년 전 이야기인데 다니는 테니스장 히팅 파트너 중 한 명이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있길래
다쳤냐고 물어보니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자재에 맞아서 머리에 피가 났다고 하길래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하니 멋쩍은 웃음을 짓던 게 기억나는데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시립 병원에 간 그는 대기환자가 많은 데다 머리를 다친 거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동네에 제법 큰 사립병원에 갔는데 수중에 현금이 얼마 없어서 진료접수를 바로 하지 못하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연락했으나 바로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병원 복도에 방치되어 있던 그는 바로 그날 사망했다.
채 서른도 되지 않았고 아이가 둘이었다.
성실하고 싹싹했으며 평일에는 건설현장, 주말에는 테니스 장에서 일했으며
오토바이를 할부로 사서 일할 때 편하게 다니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토록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실한 나라가 필리핀이다.
보건소나 시립병원은 진료비는 무료이지만 대기 시간 길고, 약이 모자라거나 진단이 부정확한 경우가
흔해서 중증질환이나 사고 발생 시 공립 병원으로 이송되나, 환자 가족이 약품이나 소모품을 사 와야 하고
돈이 없으면 치료가 지연되거나 사실상 입원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간신히 치료비를 댈 수 있더라도 중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병원에 CT 같은 기본적인 장비도 부족하다.
서민층은 아프면 그냥 죽는다. 과장이 아니다.
중산층도 조금은 상황이 낫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PhilHealth (공공 건강보험)이나 HMO(민간 건강보험)에서 경증 질환 정도는 커버가 되나
중증은 마찬가지로 치료가 제한된다.
상류층이나 갈 수 있는 고급병원은 비용부담이 엄청나고 진짜 상류층은 중병에 걸리면
차라리 싱가포르 같은 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우리 교민 중에도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져서 국공립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여럿 있었는데
상태가 호전되고 치료가 잘 되어 멀쩡하게 퇴원한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일반 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원비를 못 내고 야반도주해서 병원 측에서 대사관에 항의를 하기도 한다.
오래 산 교민들은 다들 빨리 한국에 가서 치료받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항상 제때 비자연장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미루다 귀국시기를 놓쳐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미 늦다.
항상 긴장하고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