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는 개인과 사회가 발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만이 실수에 집착한다.'
- 키케로
실수나 실패는 사람을 깎아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고 나아지려는 사람됨의 모습은 그 사람을 매우 빛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간단해 보이는(?) 실수나 실패의 인정을 우리는 종종 쉽게 하지 못하고, 못 본 체하거나 남이나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리거나, 그대로 안고 간다.
다른 이가 실수나 실패에 대해 지적하면 버럭 화를 내거나, 너는 뭘 잘한게 있느냐 너는 이걸 실수하지 않느냐 하며 본질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것들에 대한 시비를 걸기도 한다.
실수나 실패는 그 사람이 뛰어나고 아니고를 떠나서 모든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고, 그 사람이 정말 뛰어난가 아닌가는 그걸 인정하느냐 아니냐, 개선하느냐 아니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실수나 실패를 본인과 동일시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실수나 실패를 스스로와 동일시하여 실수와 실패의 지적을 마치 나 자신이 못난 것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런 경향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취를 잘 이뤄보지 못한 사람들에서 두드러지는데, 무의식에 있던 본인의 억눌린 자신감이 다른이가 하는 실수에 대한 지적과 충돌하면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성취를 많이 이뤄보고 안정된 사람은 그래서 오히려 남이 그의 실수를 지적하면 시원하게 때로는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공을 해보고 자아가 안정된 사람은 더욱 발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욱 실수를 안고가는 양극화도 종종 일어난다.
사회에서건,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남의 실수를 이야기해주는 문화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법규나 배려를 지키지 않거나, 말투를 험하게 하거나, 분명 더 좋은 습관이 있는데 나쁜 습관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서로가 말해주고 더 나아진 사람과 사회가 되는 문화가 필요하다.
실수와 실패에 침묵하는 사이, 침묵하는 사회는 결코 좋은 관계나 사회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인데, 친구의 나쁜 습관이나 행동을 단지 친구라는 이야기로 침묵하거나 사이가 멀어질까봐 이야기하지 않고 점점 쌓여가는 관계를 종종 본다. 그런 관계는 종종 서로에 대한 나쁜 뒷말이나 한번의 충돌로 멀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다른 구성원의 실수나 실패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조직도 마찬가지다. 서로 참견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상급자가 다른 직원의 의견을 억누르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 등으로 조직 내에 잘못됨과 실패를 말하지 않고, 외면하고 쌓아두는 조직은 결국은 사람 관계 때문이든 고객의 외면 때문이든 무너지게 된다.
물론, 실수와 본인을 동일시하지 않게 세련되게 이야기해줄 말하기 방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실수를 받아들이고 본인과 동일시하지 않는 자세다.
그가 어린 사람이건 나이든 사람이건,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건 아니건 그건 전혀 상관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사람의 나이나 자리가 있다고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더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실수나 실패를 이야기하기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