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Yellow Brick Road, Elton John
“뭐하고 살아?”
오랜만에 걸려 온 지인들의 전화는 늘 이 한마디로 시작한다. 일일이 설명하기 번거롭고, 말해야 선명하게 가닿지 않을 것 같아 머뭇거리면, “심심하진 않냐,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하고 연락도 없이 지내냐, 혼자서 먹는 것은 잘 챙겨 먹냐?”로 이어진다.
게으른 野人이 되기로 했다
수도를 둘러싼 성 밖 100리까지 ‘교郊’라 하고 그 바깥 지역을 ‘야野’라고 하니 열 달 전 나는 ‘교외’ 작은 아미산마을의 시골 사람, 스스로 ‘야인’이 되길 자처했다. 5도 2촌의 주말 촌 생활까지 치면 벌써 2년이 넘었다. “한두 달 그러다가 지치겠지”하는 지인들의 기대와 달리 작년 가을부턴 아예 내려와 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니 만들어서 했다. 퍼걸러를 만들고, 울타리를 세우고, 나무를 자르고, 옮겨 심고,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도 하고, 온 가족 바비큐 파티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했다. ‘은퇴해 시골에 와서도 이처럼 바쁘게 살면 뭐가 달라진 거지?’ 몸만 다른 곳에 있을 뿐이다.
그런 의문이 들면서부터 그냥 ‘놀기’로 했다. 루소의 말처럼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버리고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았다. 마치 즐겁기 위해 세상에 온 것처럼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자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특히 어느 한 구절에 멈춰 연상하는 시간이 늘었다. 거울이 늘어선 방에 들어선 듯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또 며칠씩 장르 불문하고 꽂히는 음악 한 곡만 틀어놓기도 한다. 20대 이후 가슴 깊이 처박아둔 채 잊고 살았던 울림이다.
잘하자면 집안일도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적당히 한다. 아니 내킬 때 한다. 가끔씩 아내가 들여다보고 가지만 나름 살림에 재미도 붙였다. 나를 잘 먹이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잘 먹으면 힘이 생기고 다른 일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짜면 물을 더 넣으면 되고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으면 된다. 간만 맞으면 요리는 대체로 맛이 있어 진다. 편하게 마음먹으니 칼질도 부쩍 늘었다. 빨래와 이불을 햇볕에 너는 것은 행복한 작업이다. 햇볕 내음이 천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자꾸 코끝을 가져가게 된다.
정원생활자의 관심은 집안보다 마당에 있다. 봄이면 텃밭에 채소를 심고, 여름엔 풀을 매며,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눈을 걷어낸다. 그저 가꾸어 수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발견에 눈을 뜬다. 시멘트 벽, 아스팔트 길에 쏟아내던 악다구니가 이제 꽃 한송이, 기어가는 풀벌레와의 대화로 바뀌었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들도 신부가 되고, 스님이 된다.
게을러야 잘 살 수 있다
아마도 계속 일에 매달려 생활했다면 나는 벌써 지쳤을 것이다. 적당히 무시하며 평생 내 안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던 근면 성실의 가치를 포맷하고, 야심 없는 삶에 대한 경고 스위치를 꺼나갔다. 그래도 가끔 불편한 죄의식이 고개를 들고, 잘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곤 한다. 게으름이 무능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경쟁과 평가 때문인데 다행히 이곳엔 비교 대상이 없다. 내가 좋다는 신호를 보내면 하루하루가 만족스럽게 지나간다.
이 친칠라는 평생 "생산적인" 일을 한 적이 없다.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내가 준 목각 장난감을 부수는 게 전부다. 하지만 대낮에 축 처져서 졸고 있는 모습을 봐도 나는 친칠라가 얼마나 "게으른지" 경멸하지 않는다. <중략> 그저 그 녀석을 사랑하고 귀엽다고 느낀다. 내게 그 녀석의 가치는 활동 수준이나 내 삶에 그 녀석이 "기여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 그것의 가치는 아름답고 불완전하게 살아 있는 데서 온다.
『게으르다는 착각 (Laziness Does Not Exist)』에서 Devon Price는 그의 반려동물 친칠라에 대해 얘기한다. 이 작은 짐승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사랑스러운데 하물며 인간 본연의 가치가 생산성을 척도로 판단되어서야 되겠느냐고 말이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반려동물만큼 잘 쉬고 있는지?
일이 생계의 밑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일이 많다고 자본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한숨 쉬면서도, 우리는 매일 혹독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많은 사회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일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사람의 가치를 생산성과 연결 짓는 것, 나아가 도덕성으로 옭아매 게으름에 대한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의 방식일까?
쉬어야 살 수 있다. 갈수록 과열되는 경쟁을 식히는 것도,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되찾는 것도, 일 때문에 갖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모두 쉬어야 가능하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경기부양을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쉼 자체를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베이비 부머가 이런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정원과 텃밭 가꾸기는 일이자 여가다. 더구나 평생 할 수 있는 생산적 활동이다. 5도 2촌도 좋고, 별장도 좋다. 굳이 전원주택을 지을 것 없이 시골 빈집을 활용하면 비용도 환경 이슈도 적다. 지금까지 일에 치여 힘들게 살아왔다면 다르게 살아보자. “뭐하고 살아?” 자연 가까이서 게으르게 삽니다.
Goodbye Yellow Brick Road~ ♬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고한 글입니다. ☞ https://omn.kr/25qq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