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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비극과 희극

by 잼스

빌런이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악당 때문에 보는 내내 힘들고 찝찝한 기분을 견뎌야 한다. 장르도 명확하지 않다. 관객의 긴장감이나 불안감을 부추기는 스릴러물에 가깝지만, 액션과 누아르, 공포와 슬래셔가 마구 섞여 있다.


폭염이 기승이다. 햇볕은 배경인 줄 알았는데 주연으로 등장한 거다. 이 빌런은 나를 집안에 가두었다. 낮에는 불볕 때문에, 밤엔 어둠 때문에 내 생활은 의지와 달리 단순해졌다. 호기롭게 “까짓 거 물 한 번 끼얹으면 되지.”했는데 길어지는 불더위와 떨어진 체력으로 위기를 느낀다. 여름이 두 달이나 남았다니. 덜컥 겁이 난다.


무엇보다 힘든 건 엔딩을 알 수 없다는 거다. 퇴장은커녕 독해지고 과격해져 가뭄을 불러왔다. 햇볕을 먹고살던 식물에겐 양지바른 곳이 험지가 되고, 화상을 입고 한해(旱害)를 겪는 나무와 풀꽃에겐 더 이상 마당이 안전하지 않게 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태생적인 핸디캡 때문이다.


식물을 살리려 스프링클러를 돌려보지만, 가뭄은 사람에게도 위협이다. 마을 공동 수도가 메말라간다. 식수가 쫄쫄 나오는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더 이상 마당에 힘차게 물을 뿌려대며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

20250714_033117.jpg 폭염에 타들어간 인동초, 낙상홍, 작약

이제 한여름의 폭염은 당연한 기후다. 사람 잡는 더위도 자못 현실이다. 이상기후라는 말로 퉁치고 있지만 빌런의 배후엔 ‘폭염 불감증’ 같은 인간의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견디며 적응하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이 영화에 해피엔딩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불행히도 태풍과 폭우처럼 아직 등장하지 않은 배역들이 많다. 빌런이 스스로 멈추지 않는 한 불행은 지속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런을 지우는 건 또 다른 빌런이다. 폭염을 누그러뜨리는 건 태풍이고 폭우의 흔적을 지우는 건 따가운 햇볕이다. 구원해 줄 영웅은 없다. 자연에 기댈 수밖에.


주문한 택배가 왔다. 잡초와 수분 증발을 차단할 부직포다. “날씨가 따뜻하쥬?” 택배기사님의 농담에 더위가 나가떨어졌다. 한동안 대문가에 웃음이 파랗게 머물렀다. 넘치는 위트가 숨 막히는 더위를 부직포처럼 덮었다. 잠시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었다.


'더운 여름날 땀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에 비극을 초래한 건 사람이지만,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것도 역시 사람인가 싶다. 하지만 뜨거워진 지구에 내일이 사라지면, 지금 잠깐의 희극이 무슨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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