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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보를 듣고 싶다

by 잼스

온 나라가 물난리다. 기상관측 이래 시간당 최대 강수량, 100년이 아니라 20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것도 오래 살고 볼 일인가? 2세기 전 폭우를 다 겪어보다니. 혹시 이번에 겪었으니 이제 200년 후에나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마다 같은 재난이 더 심각하게 반복되고 있다.


긴급재난문자가 무더기로 쏟아진다. TV에선 “어디에 비가 많이 왔다. 어디는 폭우에 휩쓸려 갔다.”며 중계하고, 왜 폭우가 내렸는지 친절하게 분석해 준다. 덕지덕지 쌓인 문자는 때론 양치기 소년이 되고, 중계방송은 뒤늦은 변명 같아 얄밉다.


극한 호우에 집과 농경지, 마을과 도로는 이미 모두 잠겼다. 쓸려가고 잠긴 상황에 저런 방송이 무슨 소용일까 싶고, TV를 볼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방송사마다 예보 내용도 다르다. 과연 저 일기도에 색색으로 보이는 비구름 띠는 언제 확인된 걸까? 왜 확대할 수 없는 걸까?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 기후 변화 때문이라면, 앞으로도 우리는 해마다 같은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긴가? 단 얼마라도 일찍 알아챌 수는 없는 걸까? 정말 우리의 기상 예측 시스템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극한의 폭우에 당황하고 힘들어하는 예보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전엔 슈퍼컴퓨터 탓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엔 기후 변화만 되뇐다. 답이 없다. 기후 위기는 우리만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새로 둑을 쌓고 하천을 정비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완벽한 인프라가 갖춰질지도 의문이다.


그보다 일기 예측이 우선 아닐까? 조금이라도 빠르고 촘촘한 예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까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재난이 빈번한 이웃 나라의 시스템과 제도는 어떤지, 다각도로 점검하고 투자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복구 비용을 생각한다면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마당을 뒤집을 듯 벼락치던 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그간 가물었던 터라 처음엔 해갈이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기쁨은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폭죽인 줄 알았는데 폭탄이었고 이를 깨달았을 땐 이미 사방이 전쟁터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며칠 밤을 맘 졸이며 TV 중계를 지켜봤다. 그다지 크게 잘못한 기억은 없는데 지구인이라는 이유로 ‘단체 기합’을 받은 느낌이다.


처연하게 폭우 속에 버티고 선 식물들을 보고 있자니 사람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다리가 달려 있다고 한들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쉽게 거처를 옮길 수도, 맘대로 정해진 스케줄을 바꿀 수도 없다. 그늘로 숨고 빗줄기를 피하는 게 고작이다. 어딘가에 뿌리박고 사는 건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시골에 살아 보니 날씨는 생활의 시작이고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살아있는 건 물론이고 돌과 흙, 하천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은 직접적이어서 피하기 어렵고 때론 고통이 따른다. 폭우 피해 지역이 시골에 집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는 잘못이 없다. 누군가는 자연의 복수라는데 애먼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 같아 듣기 거북하다. 지금으로선 어떻게든 변화를 빨리 감지해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AI니 로봇이니 거들먹거리며 우리가 문명의 발전을 이룬 것처럼, 그래서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원초적 재난에 허둥대며 한 치 앞 날씨도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 여름은 수난의 계절이 된 걸까?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차야 할 계절 변화가 한숨과 걱정으로 점철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 비 그치고 물기 머금은 무더위가 기다린다. 모두 큰 탈 없이 여름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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