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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시든 건 폭염 때문이 아니다

by 잼스

시골 생활이라는 게 일어나 씻고 빨래해서 널고 풀꽃에 물 주고 삼시 세끼 차려 먹느라 들락날락하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밥때는 왜 이리 금세 찾아오는지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다음 끼니 궁리다. 한여름 불볕더위엔 이런 꼼지락 거림도 성가시다.


연일 폭염에 문밖으로 나서기가 두렵다. 이제 겨우 칠월 초입인데 어쩌나. 콕콕 찌르는 햇빛은 거칠 것 없어 도시보다 따갑다. 탈모가 진행되거나 아예 가릴 털이 없는 사람에겐 햇빛 세례가 재앙이다. 모자든 그늘이든 빈 곳을 숨겨야 가시 돋친 햇빛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


끈적이는 땀, 땀을 씻어낸 물, 물에 젖은 옷과 수건 때문에 빨래걸이는 늘 정원 초과이고, 물기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 햇볕은 다시 허공에 끈적함을 흩뿌린다.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태풍조차 열대 공기를 한반도로 밀어 올려 폭염이 더 심해진다니 믿을 구석 하나 없어졌다.


가뭄엔 물 주기도 눈치 보인다. 우리 마을은 공동 간이상수도를 이용한다. 모터로 끌어올린 지하수를 탱크에 저수해 급수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올 초 광역 상수도공사가 마무리되어 조만간 눈치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물은 아껴 써야 하는데 식구가 많아서 걱정이다.


햇볕이 따뜻할 때만 해도 달랐다. 뭐라도 자라서 이 퀭하고 거무죽죽한 땅을 하루빨리 채색해 주길 고대했지만, 이젠 땡볕 아래서 바랭이와 괭이밥을 솎아내며 그 푸른색을 어떻게든 지우려 하고 있으니, 마당도 풀도 어처구니없어할 것만 같다.

20250706_173849.jpg 미국선녀벌레, 초토화된 매실가지, 만병초, 모나르다

숨 막히는 날씨에도 벌레들은 아랑곳없다. 새로 나온 나뭇가지마다 ‘미국선녀벌레’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매실나무 이파리를 게걸스레 결딴내고 있는 ‘장미등에잎벌’ 애벌레에 놀라 애써 자제하던 농약을 치고야 말았다. 당장 죽겠는데 저 소나무나 단풍나무처럼 버텨보라고 하는 건 고문이다.


만병초가 시들하다. 꽃 피긴커녕 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었다. 추위에 강하고 더위엔 약한 고산지대 출신이라는데 그걸 모르고 뙤약볕에 두었다. 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살기 좋은 곳에 심어야 했다.


개양귀비 씨앗을 꼬투리 채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더니 곰팡이가 슬었다. 잘 말려서 보관해야 하는 걸 몰랐다. 다년생 ‘모나르다’는 땀띠 나게 배롱나무를 포위했다. 지난날 키 큰 식물인 줄 모르고 심은 때문이다. 그리고 몰랐다는 말은 모두 변명이다. 사람 잘못 만나 다들 생고생이다.


혹독한 날씨는 내가 가진 밑천을 들통나게 한다. 곳곳에 전시된 실패의 흔적에도 고집스레 한결같은 태도를 지속하려는 나 때문에 식물들이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더위를 먹으며 반성한다.


마치 밖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집에서 해보면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정원을 흉내 내며 아는 척 한 건 아닌지. 내가 꽃을 사랑한다고 노래 부르면 꽃도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착각한 건 아닌지. 안다고 생각하기를 경계해야 한다.

20250706_174022.jpg 애기범부채, 리아트리스, 토마토, 플록스

그럼에도 사진을 찍을 땐 보기 좋은 구석을 찾아 기웃거리게 된다. 물론 꽃과 나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다만 과장과 곡해가 생기지 않을까 싶고 잘해 나가는 정원생활자로 오인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이렇게 매번 시행착오를 겪다가 언제쯤 만족스러운 뜰과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정원을 향한 사랑은 한번 뿌리내리면 결코 죽지 않는 씨앗’이라는 거트루드 지킬의 말이 '넌 이제 시작'이란 뜻으로 들린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나름 딱 부러지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쉽지 않다. 죽지 않는 씨앗이기에 좋아하는 이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끝없이 늘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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