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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의 책, 거기에서 발견하지 못한 즐거움

by 잼스

요즘 비자발적 독서 시간이 늘었는데요. 폭우와 폭염으로 집안에 갇힌 ‘덕분’입니다. 미끄러진 김에 쉬어가는 거죠. 정원 가꾸는 분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내 관심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분들의 글인지라 감정이입도 하고 문장마다 내 모습을 비춰보게 됩니다.


정성도 공부도 부족함을 알기에 사진 속 그들의 정원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에 의심도 자리합니다. 뼈와 기름을 너무 많이 덜어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에요. 시골과 정원에서의 일상을 다 담기에 한 권의 글과 사진은 분명 한계가 있거든요. 간섭인지 손길인지 분명하지 않은 지점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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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28년 차 푸드 디렉터인 박현신의 <키친 가든 & 라이프>는 자신의 텃밭 정원에서 자라는 다양한 제철 채소와 허브를 보여주고, 이를 응용한 특별한 레시피도 함께 소개합니다. 저자의 집과 작업실, 키친 가든을 둘러보고 나면 취미가 아니라 생활과 직업으로서의 정원 가꾸기가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당연히 정원엔 진심이 담기겠죠?


안타깝게도 혼밥러인 나는 눈으로만 음미합니다. 텃밭에서부터 푸짐한 제철 채소 덕에 애호박볶음과 전, 오이무침에 오이 콩국수처럼 같은 재료가 반복 등장하는 게 현실이고요. 레토로트 찌개에 대파와 마늘을 추가하고 텃밭에서 딴 애호박과 부추를 넉넉히 넣어 끓인 밥상이지만 입맛을 잃진 않습니다. 기가 막힌 레시피가 있어도 똑같이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을진 의문이지만 말이죠.


<정원의 순간>은 생육 전문가 조구연 부부의 개인 정원을 소개한 책입니다. 철쭉에서 시작해 40년이 넘도록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식물(특히 만병초와 동백나무)을 열정적으로 키워 희소하고 다양한 품종을 일군 분들이죠.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남편과 정원을 가꾸며, 최근에는 장미와 무궁화에 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 이동협은 지속 가능한 정원의 조건을 이곳에서 찾은 것 같습니다.


나는 게으른 뜰지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손이 덜 가는 뜰을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죠. 마당도 사람을 닮아간다는데 처마에 주렁주렁한 거미줄이 ‘덕후’가 아니라 ‘머글’ 임을 말해줍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귀한 품종도 제 명을 다하지 못할 수 있죠. 추위든 더위든, 한해든 가뭄이든 식물이 스스로 해결하고 자라는 걸 보면 내가 키운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기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은 각각의 달마다 해야 할 일과 요령 등 정원생활의 노하우를 담고 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보테니컬아트와 그림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데요. ‘그림으로 배우는 가드닝수업’이라는 책의 부제에 맞게 정원을 가꾸는 팁과 식물 지식에 정감 가는 그림을 곁들인 것이 돋보입니다.


결국 기록입니다. 정원에선 반복되는 일이 많으니까요. 대부분 일 년 주기로 일어나기에 월별, 계절별로 정리된 자료는 요긴한 지침서가 되죠. 하지만 정원마다 식물의 종류, 기후, 토양 등 생육조건이 같지 않으니 자신의 뜰에 맞는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소소한 것까지 챙겨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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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텃밭엔 토마토가 터지고, 오이도 누렇게 꼬부라졌지만, 어느덧 벌레 먹고 덜 열려도 크게 상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무조건 잘 크고 많이 열리면 좋았고, 이왕이면 풍성하고 큼직하길 바랐죠. 지금은 감당할 만큼일 때 조화롭게 느껴집니다. 쟁여놓고 있다가 썩어가는 건 속도 문드러지는 일이라서 말이죠.


세 권의 책, 정원에서 욕망을 엿보았습니다. 꾸민다는 건 그런 거죠. 하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습니다. 각기 추구하는 목표나 처한 상황이 다르기 마련이죠. 나에게 있어 지속 가능한 정원은 편안함이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홀로서기입니다. 남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뛰어나야만 되는 건 아니죠. 정원생활은 시합이 아니니까요. 나이 들어 누리는 허송세월의 즐거움, 이런 호사에 대한 얘기는 책에 없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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