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서늘해 긴팔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소매 감촉에 문득 추석빔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날씨가 누그러지니 기분도 나긋해지는가 봅니다. 힘들 걸 예상했지만 막상 견디긴 어려웠던 여름, 폭우와 폭염이 가을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했습니다. 갈수록 여름만 살찌고 가을은 야위어 가잖아요? 여전히 뜨거운 햇볕과 꿉꿉한 공기가 철없이 설치지만, 이미 매미 울음소리는 옅어졌고 밤은 점점 길어져갑니다.
가을이 더 깊어지길 바랍니다. 아주 조금씩 풀의 성장이 느려져, 제멋대로 자라게 놔둬도 거슬리지 않는 계절 말이에요. 식물과 벌, 나비에겐 시골이 도시입니다. 높다란 나무, 빽빽한 풀이 있는 이곳에 일자리도 먹을 것도 많죠. 정원을 가꾼다면서. 봄부터 여름까지 가지를 잘라내고, 벌레를 죽이고, 풀을 뽑으며 지냈습니다. 어쩌면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일을 더 많이 했으니 이 도시에 면목 없죠. 알고도 저지르는 잘못, 가을로 구원받고자 합니다.
꽃씨를 받았습니다. 택배가 아니라 꽃대에서요. 말라비틀어진 씨앗은 의심을 품게 합니다. 아무리 흙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작고 추레한 흙빛 잉태가 새로이 보송보송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기나 할까요?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버린 건 텃밭에서 금세 싹을 틔운 무와 적갓입니다. 내년을 굳게 기약하며 우단동자, 금어초, 루드베키아, 에린기움과 같은 다년생 꽃씨를 묻어줍니다. 의심을 풀고 기대하면 쉽게 행복해지는데 왜 늘 걱정과 비관이 자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마루야마 겐지’가 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읽게 됐습니다. 귀촌을 충동 구매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섣부른 결정에 후회와 좌절을 맛보게 될 거라고요.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고,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텃밭 가꾸기는 벅차고, 고독은 시골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네요. 50년 가까이 시골 생활하면서 쓴 글이니 세세한 지적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어딜 가든 사람 사는 일엔 ‘생활’이 먼저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범죄에 대비해 침실을 요새처럼 만들고, 수제 창(槍)까지 준비하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그냥 웃어 넘기기 거북하더군요. 이쯤 되면 시골에 대한 온갖 부정적 시선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이 발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죠.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내겐 그가 경고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시골에서 처신은 골치 아픈 일이라는데, 빈집과 독거노인들이 많은 요즘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젊은 세대가 없어 돌, 결혼 등 집안 애경사가 없으니 챙길 일도 없어요. 젊은이들이 시골을 떠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빌딩 숲에서 벌과 나비, 식물이 배겨 나기 힘든 것과 별 다름없을 겁니다.
댐으로 흘러가는 호숫가에 살다 보니 수질 관리 때문에 자연히 환경 이슈가 없습니다. 시골 소음이 훨씬 더 귀에 거슬리고 잠을 방해한다는데 주변에 농경지가 없어 냄새도 소음도 거의 없습니다. 교통이 불편해 주로 자차를 이용하는데, 더 나이가 들면 운전도 불안할 겁니다. 내심 그때까지 산다면 행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다행히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아! 부동산 가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널어놓은 홍고추를 부리나케 걷으면서 “오늘은 씨 뿌린 밭에 물을 안 줘도 되겠네”하며 좋아했어요. 그러던 중에 “생각하기 나름은 무엇에 달린 걸까?”하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운이 좋기를 기대할 순 없겠죠. 시골은 불편한 곳입니다. 헌데 그런 불편과 불만은 어디든 따라오더군요. 그래서 “그건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든지, “내가 해 보니 이렇더군요”와 같은 말이 점점 두려워집니다.
마침 같은 날에 해바라기와 상사화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꽃말은 짝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이죠. 바라보고 생각만 해선 이룰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때로는 무작정 실천하는 게 답이 될 수 있죠. 아무리 이해하고 준비한다고 한들, 세상엔 직접 해 보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니까요.
한적한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한 번뿐인 것이 어디 인간의 삶만이던가요? 그 삶이 내 것이라면 불안을 즐기며 직접 해 볼 수밖에요. 어쩌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쾌히 받아들이며 삽니다. 의심을 풀고 매일을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