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갈 수 있다면 걷는다. 걷는 동안에는 냄새, 감촉 외에도 수많은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대체할 수 없는 차이 중 하나는 표정 읽기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얼굴에 담고 사는지, 수많은 낯빛이나 하는 짓을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거리도 건물도 마찬가지다.
올드타운은 건물로 짜인 마을이다. 씨줄과 날줄로 한 줄 한 줄 연륜과 역사가 그물처럼 엮여있다. 거무죽죽한 이끼로 뒤덮인 무게감, 다짜고짜 세월은 이런 거라고 드러낸다. 동서양의 이질적 결합이 주는 불편함이 되려 특별하게 다가오는 외양. 그래선가? 번듯하게 잘 생긴 건물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람도 직접 부대껴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듯,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반전을 품고 있는 건물이 너무도 많다. 정갈한 고재가 자리 잡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선, 기분 좋게 기대를 저버린 모습에 감탄이 증폭되고,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용할 수 있음에 송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전과 달라진 건물들을 기억해 내는 즐거움도 있다. 옛 이름 그대로 자리를 옮긴 카페, 속옷만 갈아입은 갤러리, 화사하게 외관을 단장한 Bar, 몰라보게 바뀌어 다시 돌아와 확인하게 만드는 비스트로, 기념품점도 옷가게도 한결같은 데는 없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지 주름이 늘었다.
사람 사는 곳이라 사연도 있다. 엄마 가게에서 독립해 새로 식당을 연 곳, 섬 끝에서 중심부로, 작은 가게에서 큰 가게로 좀 더 번듯해져 이사한 곳. 반면 문을 닫거나 없어진 곳도 눈에 띈다. 불과 일 년, 나는 다시 와 이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데 어떤 건 이미 이 땅에 없다. 마중은 아니더라도 무뚝뚝하게 자리는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처음엔 고단한 간판과 지붕이 불쌍했으나 이내 강인하고 신비롭게 느껴졌고, 결국 누구에게나 당연한 생존의 몸짓이 스며있음을 보았다. 어떤 날은 그 오래된 색이 도도해 보이고, 다른 날엔 처량해서 뭔가 있을 거라 캐고 다녔지만, 이제는 영롱한 등불이 무얼 가리려는 의도가 아님을 안다.
올드타운에 온다고 누구나 같은 올드타운을 여행하진 않는다. 삶이 구경거리가 아니듯 그것을 감싸고 있는 건물도 그저 눈요기로 남지는 않는다. 아직 내 방식을 세우진 못했지만 이제 겨우 남들이 본 것을 보는데서 벗어난 것 같다.
어쩌면 여기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라는 말에 묻혀 다시 가지 못한 다른 장소들처럼, 시간에 쓸려 이전의 표정은 기억에 남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숱이 빠지고 주름이 깊게 패이는 동안, 한 마을이 하나의 파운드 오브제 아트(Found Object Art)로 스러져가는 모습만은 두고두고 되새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