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만남

by 잼스

1. 서양인들의 타고난 체격은 놀랍고도 부럽다. 훤칠한 신장에 떡 벌어진 어깨, 근육질의 팔다리를 보면 가끔 위축되기도 한다. 외길에서 마주친 덩치에 움찔했다. "After you"에도 극구 사양하고 길을 비켜준다. "Have a good day."에 "You, too. sir."가 바로 돌아온다. 예의까지 바르면 어쩌란 말인가. 기분이 유쾌했다. 한편 부피만 건실한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앞서 ATM을 이용하던 덩치가 뒤돌아서 내게 "Empty!"라고 외치는데, 앳된 아이 목소리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웃음을 삼켰다. 또 한 번은 식당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연결된 탁자에 얼굴이 농구공만 한 빡빡머리 중국인 덩치가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다. 살집에 눌린 작은 의자, 낮은 탁자 아래 욱여넣지도 못한 다리, 둘 다 불쌍했다. 혹시 '흑사회'인가 싶어 눈도 못 마주치고 식탁만 닦았다. 이제 만 보만 걸어도 허리가 당기니 건장한 몸을 보면 자꾸 탐이 난다.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허락하련만. 물론 농구공과 살덩이는 빼고 말이다.

2. KAIST 독일 청년들을 식당에서 만난 건 참 신박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나 자신이 참 우습다. 우리말로 추천 메뉴를 물어봤을 땐 어느 정도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니 그리한 것이었을 텐데 왜 난 굳이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떠들었던 걸까? 왜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 걸까? 그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의아해하지 않았을까? 좀 더 사려 깊게 처신하지 못한 게 몹시 부끄럽다. 한편으론 반갑고 흥겨워서 그런 거고, 실례를 범한 것도, 나쁜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신경 쓸 일이냐 싶기도 하지만, 한국어로 표현하려 했던 친근감을 막아선 게 아닌지, 혹시 언어 열등감이나 사대의 감정은 없었는지, 여행에 익숙해지니 내가 무슨 리얼리티쇼의 주인공이 된 걸로 착각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좀 창피하다.

이전 12화아홉 번째 숙소, N번째 다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