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텃밭을 일구다

Today, John Denver

by 잼스

겨울은 막살기에 좋은 계절이다. 아무나 그럴 순 없다. 은퇴한 정원생활자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심심하면 재미난 영화나 유튜브 영상을 즐긴다.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듣는다. 딱히 파고드는 장르는 없다. 이승환에서 Gustav Mahler까지 내키는 대로, 그 순간의 감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면 족하다. 맘 내키는 대로 살기. 겨울을 보내는 나의 생활태도다.


혼자여서 가능한 일상이다. 누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는 홀가분함이 한 밤중에 깨어있거나 넉넉한 볼륨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망설이지 않게 한다. 하루종일 책을 읽기도 하지만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편안함이 시골의 겨울에 있다. 문득 행복은 성취보다 편안에 더 가까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늦은 겨울은 이른 봄이다. 집안에서 집밖으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한 과도기. 햇살 좋으면 마당에 나가 웃자란 나뭇가지를 치고, 마른 가지와 솔잎을 모아 태우며 불을 쬐고 연기를 마신다. 태워서 남은 재는 거름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왜 화전민이 떠오르는지? 어쨌든 텃밭과 퇴비장에 뿌려주면 흙과 섞여서 토양이 중화된다.


새순을 머금은 나무들에겐 꽃을 틔우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나뭇가지 끝을 따라 둥그렇게 땅을 파고 유박비료(油粕肥料)를 준다. 뿌리 가까이 주면 흡수에 어려움이 있다. 유박비료는 피마자(아주까리) 씨앗에서 기름을 짜낸 뒤 그 부산물을 주원료로 만든 유기질비료다. 얼핏 거창한 일 같지만 그래봐야 고작 삼사십 분이면 작업이 끝난다.


봄을 예고하는 우수(雨水)를 맞았으니 막살기만은 어렵다. 자연이 내게 일을 시킬 것이다. 뭐, 절기에 맞게 살아야지. 눈, 얼음, 서리가 녹아 빗물이 되니 추위가 물러간다지만 그래도 경칩은 지나야 봄을 실감하게 된다. 아니다! 이미 수선화 새순이 올라왔고 목련 꽃봉오리가 맺혀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마다 움튼 순이 보인다. 열심히 또 한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몰라본 것뿐이다.


잔디마당에는 제초제를 뿌렸다. 입제(粒劑, 작은 입자로 된 농약)라서 모래에 섞어 흩뿌린다. 1년에 봄가을로 두 번 정도 사용하는데 가을엔 수화제(水和劑)를 물에 섞어 분무기로 뿌린다. 넓은 잔디밭에 풀관리가 어렵기도 하고 유해성분이 적다고 해서 선택성 제초제를 쓴다. 잔디만 살고 다른 풀, 특히 세포아풀, 질경이, 쇠뜨기 등은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늙어서도 정원관리를 하려면 농약을 알아야 한다. 잘 알아야 적정하게 다소나마 친환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정원생활을 준비한다. 겨우내 묵힌 텃밭에 검불을 긁어내고 삽을 푹 찔러본다. 다행히 얼어있지 않았다. 토양살충제와 퇴비를 뿌린 후 흙과 섞어주듯이 삽질을 한다. 퇴비, 밑거름(기비, 基肥)은 씨 뿌리거나 모종 심기 전에 토양에 미리 섞어 천천히 효과를 내도록 하는 비료다. 하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밑거름이 소진될 때쯤 작물의 생장에 맞춰 추비(追肥)를 주게 되는데 이때는 주로 속효성 화학비료를 사용한다. 보통 지효성 비료는 3개월, 속효성은 열흘 정도 효과가 간다고 보면 되겠다.


올해는 식물이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남북으로 고랑을 냈다. 이미 텃밭틀을 설치한 곳과 넝쿨채소 때문에 높은 지지대를 세워야 하는 곳은 그대로 두었다. 세 시간 만에 구획 정리된 텃밭을 바라보니 뿌듯하다. 이제 새해 농사와 파종 계획을 세우고 씨앗을 준비한다. 씨감자, 완두, 열무와 상추가 선발 라인에 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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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모종과 대형 화분은 올해의 기대주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는 ‘Kitchen Garden’, ‘Vegetable Garden’, ‘Productive Garden’ 등이 쓰인다. 키친 가든이라는 말은 정원에서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직접 부엌에서 요리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무엇인가 수확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프로덕티브 가든’이라고도 한다. <중략> 텃밭 정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원이지만, 현재로서는 유럽에서처럼 다양하게 발전돼 있지 못해 안타까움이 많다. 보는 즐거움에 먹는 즐거움을 더하고, 더불어 건강한 원예활동까지 함께 할 수 있는 1석 3조의 정원... (정원의 발견, 오경아)


봄 텃밭에는 감자, 완두, 고추, 토마토, 옥수수, 애호박과 오이 등을 심을 계획이다.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비닐로 멀칭을 했다. 감자를 심을 곳은 투명비닐을 씌웠다. 지열 상승에도 좋고, 나중에 올라온 싹을 볼 수 있어 꺼내기 편하다. 한 이랑은 그냥 두었는데 열무와 시금치 등 여러 번 키워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위한 것이다. 보다 넉넉한 공간을 활용을 위해 상추 등 쌈채소는 플랜트박스에서 별도로 키울 것이다.


딸기모종 몇 개를 주문해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고 선룸에 모셔두었다. 초여름에 딸기 몇 개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지금은 화초가 정원의 중심이지만 본디 정원의 주인공은 물이었다. 그래서 둥그런 초대형 화분도 마련했다. 부레옥잠과 어리연 등 수생식물을 키워보려 한다. 어렵지 않으면 화분 몇 개를 더해 연못처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늦서리, 그러니까 마지막 서리가 내리는 날을 유의해야 한다. 섣불리 절기를 믿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굳이 조바심 낼 필요가 있을까? 차분히 지켜보며 조금씩 변화하는 정원의 모습을 즐길 일이다.


Today is my moment, and now is my story,

I'll laugh and I'll cry and I'll sing.

이제 막 봄이 움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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