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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울 만큼 당연한 소리"?

- 언어적 인지 부조화(맨붕) 경험

by 콜랑

인간의 두뇌는 어마무지한 지각 정보를 처리하여 상당히 단순화된 인지 정보로 압축(혹은 추출 혹은 디지털화 혹은 ...)한다. 아마도 인지된 것들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인지된 것들을 처리하는 능력은 컴퓨터에 상당히 뒤쳐지지만 지각 정보를 인지 정보로 필터링(?)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거. AI가 인간을 따라오려면 이런 능력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학습 데이터 구축하다 보면 세월 다 갈지도...


좌우간, 인간의 인지 처리 능력은 분명 대단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아서 꽤 많은 실수를 한다. 실수의 대표적인 예라면 산술적 처리가 아닐까 싶고, 그 다음 대표로 언어 처리를 들 수 있지 않을까? 말같지 않은 말부터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아리송한 말을 물론이고 주제가 분명한 말까지, 아니, 예술적인 말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니 언어 처리 역시 미적분보다 많이 모자라지는 않을 게다.


여태 포스팅을 하면서 발화 실수를 통사적 인지 처리의 관점에서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어휘적 인지 처리도 통사적 인지 처리만큼이나 가중치 계산의 잘못이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러울 만큼 당연하"다는 표현을 접했을 때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작문 시간에 늘 등장하는 내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으니까. 각설하고 새삼스러울 만큼 당연하다는 에를 보기로 하자.


사례 출처: 능격-절대격 언어? 왜 이런 문법이 쓰이는 걸까? (brunch.co.kr)


우선, '새삼스럽다'나 '당연하다'는 '어떤 사안(정보)이 이미 알려져 있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새삼스럽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쓸데없이 혹은 불필요하게 다시 들추어낼 필요가 없을 때에 특화된 표현이다. 그래서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하고 있다'는 표현은 자연스럽다. 대체로 '새삼스럽다'와 '당연하다'를 함께 사용하면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새삼스러울 만큼 당연하다"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왜 그렇게 이 표현이 어색해 보이는지, 그리고 따져 보고 따져 봐도 왜 여전히 그런지 모르겠다.


따져 보자. '새삼스러울 만큼 당연하다'는 말을 고쳐 써 보면 '다시 언급하면 쓰잘데기 없이 느껴질 정도로 당연하다'는 뜻이 된다. 의미를 생각해 보면, 위 사진에서 보듯 맥락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단순한 동어반복 같지도 않다. '새삼스럽다'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어감(뉘앙스)이 있으니까. 이 표현이 어색할 논리적 이유는 없어 보인다. 딱 하나 트집을 잡자면 새삼스럽게 '새삼스러울 만큼'이라는 수식을 덧붙였다는 정도랄까! 그냥 '당연하다'고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새삼스러운' 경지로 끄집어 가야되느냐고 트집을 잡고 싶다고나 할까!


논리적인 조화에서는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화용상의 특수성을 가진 어휘를 그렇지 않은 어휘와 함께 사용한 예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어색해 보이고 이해가 잘 안 되다까 따져 본 후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어색함을 지우지 못하는 사례이다.


희한해서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 줬더니 다들 처음에는 '뭔가 이상한데' 싶다가 조금 생각해 보고는 '되는 것도 같은데'라는 반응이다. '당연해서 새삼스러울 정도이다'라고 하면 자연스러운데 '새삼스러울 정도로 당연하다'고 하면 왜 이렇게 이상해 보일까? 언어적 맨붕에 처했다. 창조적인 통사 구조 처리에 드는 인지 처리의 부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어색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마음이 거만해지고 직관이 완고해지지 않기를... ^^;;



<대문 사진 출처: 인지부조화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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