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의미 해석-문법적일까 관념적일까?

- 글쓰기의 필요성 (1)

by 콜랑

논리학에서 '~'는 명제를 부정하는 약호로 사용한다. 명제 P의 부정은 '~P'로 나타낸다. 'P'가 '실패했다'라면 '~P'는 '실패하지 않았다'이다. 'P'가 '없다'라면 '~P'는 '없지 않다/없는 게 아니다'이니까 곧 '있다'가 된다. 자연어에서는 '있다/없다'가 구별되고 여기에 다시 부정이 붙을 수 있으니 존재/부재와 긍/부정의 경우의 수는 4 가지가 된다. 논리학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 '있다'와 '~있다' 두 가지, 혹은 '없다'와 '~없다' 두 가지면 족하다. 둘 중 한 가지 표시 방식만 사용하면 된다. '0'과 '1'을 이용하는 컴퓨터와 더 유사한 면이 있다. 자연어가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복잡한 이유 중 하나가 논리적으로 동일한 값을 표현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자연어에서는 잉여적인 어휘 체계 외에도 논리적 의미를 표시할 때 관찰되는 까다로운 현상이 또 있다. 부정의 해석과 관련된 문법 현상이 그 예이다. 아래 영어 문장을 보자.


ye know in all your hearts and in all your souls, that not one thing hath failed of all the good things which the LORD your God spake concerning you - Joshua 23:14 <King James>


영어의 경우 'not'의 의미 해석과 관련 문법은 한국어 화자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진다.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 여호수아 23:14 <개역한글>


번역문을 보면 영어 'not'은 '없다'에 해당한다. 조금 단순화하여 표면적으로만 분석해 보자. 핵심 부분은 'one thing(하나), fail(어기다), not(없다/아니다)' 세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명제는 '주어+술어'로 구성된 문장에 해당하므로 'one thing(하나)+fail(어기다)'가 명제가 된다. 세 성분을 각각 'X, Y, not'이라고 하면 명제 'P'는 'X+Y'인 셈이다. 영문법이나 한국어 문법이나 이 점은 다르지 않다. P라는 명제의 의미는 언어적으로 (혹은 문법적으로) 'X+Y' 구조의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 때, 명제 P를 부정하는 방식은 영어와 한국어가 상이하다. 앞서 프로그래밍 언어나 논리식과 같은 인공어와 자연어가 다르다고 했는데, 여기부터가 자연어가 더 복잡해지는 양상에 해당한다. 자연어는 개별 언어(영어, 한국어 등등)마다 '~P'를 표시하는 저마다의 문법을 가지고 있다. 위 예문을 예로 들면, 영어는 'not+X+Y'(not + one thing + fail)가 문법일 테고 한국어는 'X+Y+not'(하나 + 어긋남 + 없다)이 문법일 게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영어의 문법이다. 위에 든 영어 예문은 아래와 같이 고쳐도 의미가 동일하다.


ye know in all your hearts and in all your souls, that not one thing <of all the good things which the LORD your God spake concerning you> hath failed.


엄밀히 말하면 원래의 예문은 위 문장에서 '< >' 부분이 너무 길어서 후치 시킨 것(문어체)이다. 의식의 흐름과 도상적으로 보다 유사한 것은 원래의 예문이 아니라 위 예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이런 문법적 융통(?)이 불가능하다. 굳이 해 보자면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게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좋은 말씀과 관련한 것임을' 정도일까? 머리가 좋은 소수의 사람들은 알아서 이해해줄 법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매우 어색하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


영어에서이런 도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문법적으로는 'not'이 'P' 즉 '[X+Y]'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X'와 통합한 것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영어에서 'not+X+Y'의 구조는 '[not+[X+Y]]'가 아니라 '[[not+X]+Y]'로 분석된다는 거다. 직관적으로는 'not'과 'one thing'을 순차적으로 읽어나가므로 둘이 먼저 통합하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의미 해석과 관련하여 재구성(reconstruction)이나 재구조화(restructuring)를 통사적으로 상정하는 생성문법을 수용하더라도 절 경계(장벽) 밖으로 명사 수식부를 후치시키는 방식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두고 논박을 이어갈 듯 하다. 아무튼, 문법적(통사적) 설명만 보자면 'P'의 부정을 '~P'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P'의 성분인 'X'의 일부를 해체(편의상 'x1', 'x2'로 하자)하는 문법, 즉, 'not + X + Y'를 'not + x1 + Y + x2'로 만드는 문법이 있는 셈이다. 영어에는 있고 한국어에는 없는 문법이다.


한국어 데이터만 놓고 보면 생각하기 어렵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영어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소위 통사적인 현상이라고만 바라보았던 부정 관련 문법 현상은 사실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 단기 기억이 관련되는 의미 처리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의 경우에도 조선어에서 관찰되는 '안' 부정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종종 접하게 되는 조선족의 한국어를 보면 '빨리 와서 안 먹어?'가 아니라 '빨리 아니 와서 먹니?'와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고, 때로는 재미삼아 따라할 때도 번역에 준하는 정도의 문법 처리(인지적 부담)이 없다. 부정 성분('not', '아니' 등)의 어순을 통사적인 통합 현상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관념(의미)적인 결합체와 대응 양상을 판단하는 과정에 단기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모종의 인지적 버퍼(cognitive buffer?)가 관여하는 현상으로도 볼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이런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인지 실험은 설계하자고 하면...? 상당히 복잡하다. 에구구...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복잡한 언어가 우연히 나타났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우리의 신경계는 어떻게 언어 능력을 탑재할까??


<대문 사진 출처: 한국어의 부정 표현 · ratsgo'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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