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문외한이지만, 글을 사랑하는 취미인으로서 한글날을 맞아 작은 헌시을 남깁니다. 사흘 동안 틈틈이 다듬은 마음의 흔적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은 한때 공기였고,
그 공기를 붙잡기 위해
사람은 자음과 모음을 나누었다.
그 이전의 말은 입김과 물결,
새의 울음과 발자국의 모서리였고,
우리는 그 흔적을 따라 소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가 쓰는 모든 문장은
숨의 잔향으로 이루어진다.
호흡의 기억이다.
목구멍의 문지방을 넘은 온기,
혀끝에서 일어난 미세한 파문이
종일 귀와 가슴에 은근히 남는다.
한글은
침묵을 번역하는 구조물.
혀끝과 하늘끝 사이를 잇는 경첩,
어둠의 모양까지 기록하는 바늘시계,
말의 뼈대를 만지지 않고도 세우는 설계도.
종이 위에 문장을 적을 때마다
하나의 우주를 조립한다.
점과 획이 서로 맞물려 축을 세우고,
쉼표가 별자리를, 마침표가 지평선을 만든다.
‘ㅅ’의 날개가 바람을 만들고,
‘ㅁ’의 울림이 그 바람을 품는다.
‘ㄹ’의 굴곡은 강이 되어 흐르고,
‘ㅈ’의 톱니는 생각의 문을 천천히 연다.
이토록 작은 부호들 속에
한 세계가 다시 창조된다면,
말이란 어쩌면 신의 유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루치 인사를 적어 내려갈 때마다
그 유언은 오늘의 언어로 다시 낭독되고,
한 글자씩 더 선명한 숨을 얻는다.
지상에는 천국이 없으니
우리 언어 위에 그것을 건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