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国合戦 ― 蒙古襲来異聞)』- 2014 서점선정 역사소설 1위
『異国合戦 ― 蒙古襲来異聞)』
역사에는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종종 승리한 전쟁은 신화로 떠받들고, 패배한 전쟁은 침묵 속에 묻는다. 그러나 일본열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공식은 예외를 만나게 된다.
13세기, 두 차례에 걸친 몽골의 일본 원정(元寇)은 일본이 외세의 침략을 받은 거의 유일한 사례로, 그로 인해 이 사건은 일본 역사에서 ‘방어의 신화’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異国合戦』은 바로 그 원정을 다루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방어전의 신화를 해체하고, 그 안에 감춰진 인간의 고통과 국가의 폭력성, 군사 전략의 이면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저자 이와이 미요지(岩井三四二)는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서,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역사서나 연대기에서 한 줄로 기술되는 ‘적군 침입’이라는 말 뒤에는, 무수한 개인의 삶이 붕괴되고, 병사의 살과 피가 흘러나간다. 『異国合戦』은 바로 그 개인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병사, 농민, 무장, 해적, 궁수, 심지어 몽골 측 병사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전투를 수행한 개별 인간들의 눈으로 전쟁을 묘사한다.
이 책의 제목 ‘異聞(이문)’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본 이야기’를 뜻한다. 이는 곧 이 작품이 정사(正史)가 아닌, 공식 서사에서 배제된 이야기들을 복원하려는 시도임을 암시한다. 가마쿠라 막부의 방어전, 그리고 ‘신풍(神風)’이라는 개념은 일본의 국수주의적 내러티브 안에서 이미 ‘성역화’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영웅담의 기세를 의심한다. 실제로 당시의 일본은 내부적으로 혼란 상태였고, 각 지역의 무사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자신과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즉, 방어전이라기보다 각자의 생존전이었다.
이와이 미요지는 ‘역사소설가’라기보다는 ‘역사를 사유하는 소설가’에 가깝다. 그는 작품 안에서 명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몽골군이 잔혹했는가? 일본 측이 정당했는가? 그런 질문은 이 책에서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 공동체 내부의 붕괴, 신념과 배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선택 같은 주제가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극(時代劇)’이라기보다, 인간 조건을 다룬 현대소설에 가깝다.
문체는 간결하고 건조하며, 대화문이 적절하게 리듬을 부여한다. 등장인물은 다수 등장하지만, 모두가 제각기 동시대의 감정과 고통을 공유하며 한 편의 거대한 합창을 이루는 듯한 구조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회상과 단절, 인물 간의 시점 전환을 통해 지그재그로 전개된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메타 질문을 유도한다. 결국 이 책은 단지 몽골과 일본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의 정치학과 정체성의 문제까지 끌어안는다.
인상 깊은 대목 중 하나는, 일본군 내부의 혼란상이다. 당시 가마쿠라 막부는 전국적 동원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각 지역의 무사들이 ‘공(功)’을 올려야만 보상을 받는 구조였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전우의 죽음보다도 자신의 전공 인정을 위해 적의 목을 베어가는 장면에 더 열을 올린다. 전쟁은 이미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평가를 위한 경쟁으로 타락해 있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현대의 기업사회, 학벌사회, 심지어 SNS상의 ‘성과주의’까지 떠올리게 된다. 『異国合戦』은 그런 식으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편, 몽골 측의 묘사도 단선적이지 않다. 침략자라는 정형화된 틀을 넘어서, 그들도 하나의 세계관과 규율, 전통을 가진 ‘국가’였으며, 그들의 병사들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자 삶을 가진 개인이었다. 이 소설은 양 진영을 도식화하지 않으며, 모든 폭력은 양면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설득해낸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고려군의 존재를 정면으로 다룬 방식이다. 대부분의 일본 역사소설에서 고려군은 ‘몽골의 부속 병력’ 정도로 단순하게 처리된다. 하지만 『異国合戦』은 그러한 역사적 편의주의를 넘어서, 고려 병사들의 내면과 위치를 포착한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 예속된 부마국으로, 국왕조차 자주권이 없는 상태였다. 작중 등장하는 고려 출신 병사들은 명확히 침략자의 편에 서 있지만, 그들은 제국의 병기이자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해상에서 격침된 고려군 병사의 시신을 보고 일본 병사가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다”라고 중얼대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정서적 중심축이 ‘국가’가 아니라 ‘인간’에 있음을 보여준다.
『異国合戦』은 단순한 전쟁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해체이자, 민족주의적 서사에 대한 문학적 저항이며, 동시에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조건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깊이 있는 시도다. 작가의 탄탄한 사료 조사, 뛰어난 캐릭터 설계, 리듬감 있는 문장과 다층적 구조는 이 작품을 단순한 역사소설의 범주를 넘어서는 문학적 성취로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