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The Beginning 1

신은 바다를 건너왔다 - 고사기(古事記) 신화 속 한반도계 이민의 흔적

by KOSAKA

오사카와 한반도의 교류 1500년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될 듯 하다.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이방의 왕족들이 일본 열도에 정착한 것은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세운 문명적 전이의 순간이었다. 특히 백제계 왕족과 귀족들은 고분시대 후반부터 아스카·나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왕실 내부로 깊숙이 스며들며, 천황가의 모계에 흔적을 남기고 도시 형성의 초석이 되었다.


이들의 발자취는 고대 도읍 나니와(현재의 오사카)를 중심으로 펼쳐진 교역로와 신앙, 제도,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며, 오늘날의 오사카가 지닌 도시적 기질과 개방성, 아시아적 중층성을 설명해준다. 그 배경의 배경이 되는 신화시대부터 한반도 이주민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 이후 고분시대를 거쳐 일본 왕정과 오사카의 기원을, 백제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시선으로 다시 읽고자 한다....부디 기나긴 고유명사들로 인해 뒤로가기를 눌러 재미있는 스토리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일본의 고대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열도를 다스렸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신화의 하늘은 실은 바다 너머, 한반도를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천손강림(天孫降臨)과 국토 창조의 신들이 실제로는 외부에서 온 인물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여럿 발견된다. 그들은 과연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였을까, 아니면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실존 인물들의 집단기억이자, 정치적 권위의 정당화를 위한 신격화의 결과였을까.

스사노오노미코토.jpg 일본 신화 속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가 이즈모에서 전설상의 괴물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퇴치하는 장면을 그린 목판화(月岡芳年, 1887년)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는 대표적인 예다. 그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남동생으로, 『고사기』에서는 거칠고 방탕한 성격 때문에 하늘에서 쫓겨나 이즈모(出雲) 지방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라는 괴물을 퇴치하고, 지역 여신인 쿠시이나다히메(櫛名田比売)를 아내로 삼은 후 토지를 다스리기 시작한다. 이 신화는 단순히 영웅서사가 아니다. 스사노오의 출신은 끝내 밝히지 않지만, 바다를 건너 외지에서 온 존재라는 암시는 분명하다. 이즈모(出雲) 지역은 일본 신화의 중요한 무대이자, 야마토 정권 성립 이전까지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고대사학자 모리타 기쿠오(森田喜久男)는 『古代王権と出雲』(2014)에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속 이즈모 관련 신화가 단지 종교적 상징체계가 아니라, 고대 권력 이양 과정을 신화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그는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이즈모 도래 서사를 "야마토 중심 왕권이 이전 지역 세력의 정통성을 어떻게 흡수하고 재배치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서사"로 해석한다. 이즈모의 왕권은 정면 충돌이 아닌, ‘国譲り, 나라를 넘겨줌)’이라는 이야기로 치환되며, 결과적으로 야마토 천황가의 신화적 정통성에 통합된다. 이러한 신화 구조는 외래 혹은 지방계 권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체제 내부로 흡수하여 천황 중심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메노히보코.jpg 효고현(兵庫県) 다지마(但馬) 지역의 역사를 상징하는 신라계 이민 영웅 아메노히보코(天日槍)의 동상

보다 노골적인 한반도계 신격의 사례는 아메노히보코(天日槍)다. 『고사기』와 『일본서기』 모두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신라의 왕자”로 소개되며,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의 다지마(但馬, 현 효고현 北部) 지방에 도착해 그곳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그의 후손은 다지마노기미(但馬君)라는 귀족 가문으로 성장하였고, 실제로 일본 조정 내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이름이 『속일본기(続日本紀)』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 등장한다. 현재도 효고현(兵庫県) 내 여러 신사(神社)에서는 아메노히보코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니라 ‘신격화된 실존 이민자’로 보는 것이 역사적 타당성을 갖는다.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는 일본 왕실 계보의 시조로 알려진 존재다. 그는 천상계(高天原)에서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아 ‘삼종신기(三種神器)’를 가지고 규슈(九州)의 다카치호(高千穂) 지역으로 내려온다. 이것이 바로 천손강림 신화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강림한 지역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해양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규슈 남부라는 사실이다.

니니기.jpg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다카치호 지역의 축제에서 천손강림 신화의 주인공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를 형상화한 인형을 태운 가마가 행진하는 모습.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지역에서는 가야(加耶) 및 백제(百済)의 청동기, 철기, 마구 등과 동일한 계통의 유물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일본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騎馬民族国家』(1967)에서 이 니니기의 서사를 “대륙에서 건너온 기마민족 지배층이 일본에 정착한 사실을 신화적으로 정당화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이를 기초로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을 주장하였으며, 비록 이 설은 현대 일본 사학계의 주류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동아시아 고대 해양권의 권력 이동을 해석하는 하나의 가설로 여전히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고사기』 신화에는 이처럼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바다 너머에서 온 것으로 암시되는 신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하늘에서 왔다거나, 천계의 명을 받고 지상에 내려온 존재로 포장되어 있지만, 서사의 구조와 전개를 따라가 보면 그들이 실제로는 외래계 권력, 특히 한반도와의 연결 속에서 설명될 여지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천손강림은 단지 신화적 주술이 아니라, 외부 문명과 권력이 일본 열도에 자리 잡고 이를 정당화하는 과정의 은유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고분시대(古墳時代)의 귀화계 씨족들과도 맞물린다. 실제로 백제계 귀화 씨족인 아야씨(漢氏), 기비씨(吉備氏), 사카노우에씨(坂上氏) 등이 천황가의 외척으로 연결되었고,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의 경우 간무천황(桓武天皇)의 모계로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속일본기』에 기록되기도 했다. 이는 외래계 귀족이 실제 일본 권력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역사적 사실이자, 앞서 말한 신화적 구조들이 반드시 허구에만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신화 속 인물과 역사 속 인물 사이의 거리는 때로 그리 멀지 않다.


고대 일본은 단일한 혈통이나 폐쇄적 권력 구조 속에서 형성된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다를 통해 들어온 외부 인재와 문명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그것을 신화로 승화함으로써 자신들의 기원을 구성해왔다. 『고사기』는 그 상징이다. 그것은 단지 일본 고대국가의 성립을 노래한 문서가 아니라, 다양한 문명의 기억을 절묘하게 짜맞춘 동아시아 교류사의 문학적 결산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신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대신, 바다를 건너왔고, 이름을 바꿔 신이 되었으며, 때로는 왕이 되었다. 일본의 신화는 곧 이민자들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신들의 고향은, 때로는 이즈모였고, 때로는 신라였으며, 아주 자주, 백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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