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톤보리, 오사카의 브로드웨이

오래된 목판화가 네온 간판으로 다시 빛나다

by KOSAKA

위 이미지는 가부키 배우 초상화(役者絵 ― 야쿠샤에)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한 장’으로 꼽히는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写楽)의 〈三代目大谷鬼次の奴江戸兵衛〉(1794)이다. 샤라쿠가 활동한 10개월 남짓한 기간에 찍은 140여 점 가운데 대표작으로, 짙은 눈썹·사납게 뻗친 손가락 ― 가부키 클라이맥스 ‘미에(見得)’ 동작을 극도로 과장해 배우의 카리스마를 압축한 그림이라 세계 여러 미술관이 “우키요에 = 샤라쿠”를 설명할 때 첫 예로 든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쿄국립박물관·국립극장 자료관 등에 소장본이 있어 교과서에 자주 실리고, 야쿠샤에를 소개하는 전시·서적의 표지에도 단골로 등장한다고.


도톤보리는 오사카가 가진 모든 과장과 활기를 한 줄기 수로 위에 압축해 놓은 공간이다. 낮에는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파란색과 회색을 번갈아 내뿜으며 거대한 거울이 되고, 밤이면 네온 간판이 강을 두 번째 하늘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지금 누비는 인파 — 관광객, 호객꾼, 거리 공연자 — 보다 오래 이 수로를 지배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가부키 배우들이었다. 도톤보리는 에도(도쿄)와 양대 축을 이뤘던 오사카 가부키의 본거지였고, 배우를 영웅·아이돌·풍자 대상 삼아 그려 낸 목판화 야쿠샤에(役者絵) 가 이곳을 문화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광고판보다 먼저 수로를 수놓은 것은 배우의 표정이 찍힌 한 장의 다색 목판화였다.

도톤보리.jpg 오사카 유명 관광지 도톤보리 전경

도톤보리라는 이름은 1615년, 상인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 개착한 운하(―堀)에서 비롯된다. 운하 완공 직후 오사카 부교는 강 남쪽 제방을 연극가에게 ‘흥행 면허 구역’으로 내주었다. 총길이 400미터 남짓한 제방 양옆에 11개의 좌(座)―가부키 극장과 조루리(人形浄瑠璃)·다키가타(滝-演出) 전문 극장이 어깨를 맞댄 결과, 도톤보리는 곧 ‘오사카 쇼와의 브로드웨이’로 불렸다. 가장 오래된 극장은 1653년 창립한 다카모토자(竹本座) 와 다케다자(竹田座), 그리고 18세기 후반 번화가 한복판에 세워진 가도자(角座) 였다. 좌마다 간판배우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는데, 객석 맨 앞줄을 사는 것은 변호사나 사무라이가 아니라 장사를 성공시킨 오사카 상인이었다. 상인은 채소 한 상자 가격을 흥정하면서도 마음에 든 배우의 초상에는 아낌없이 은화를 흩뿌렸다. 배우를 지원하는 ‘다나(檀那)’가 되어야만 좌석 뒤편 벽에 이름이 걸렸기 때문이다.

도톤보리2.jpg 메이지 초(1870 년대) 도톤보리 극장가의 화려한 깃발과 인력거-인파를 파노라마로 그린, 나카이 요시타키의 목판화 〈道頓堀芝居町賑之図〉.

가부키가 흥했으니 배우의 얼굴을 담은 그림이 팔리지 않을 리 없다. 에도의 우키요에 시장이 비녀와 요염한 유곽 여인을 소재로 삼았다면, 오사카판은 배우 그림인 야쿠샤에 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사카 야쿠샤에는 도톤보리 현장에서 태어나 현장에서 팔렸다. 목판화 장인들은 공연 초연 당일 배우가 보여 준 특정 표정, 즉 ‘미에(見得)’라 불리는 클라이맥스 포즈를 전지에 옮겼다.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은 방금 본 장면이 찍힌 한 장의 목판화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굿즈 숍에서 파는 키링·크로키 북이 이미 18세기 도톤보리 개찰구 앞에 존재했던 셈이다.


에도판 우키요에와 달리 오사카 야쿠샤에는 작은 판형(小判)과 정교한 필선, 그리고 배우 실명을 그대로 새기는 사실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오사카 관객은 배우 목소리나 몸짓을 기억했다가 판화 세부 묘사와 대조해 보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이 다시 에도로 수송되자, 에도 판화가는 자존심에 불이 붙어 배경 색·배우 포즈를 더 화려하게 꾸몄다. 결국 도톤보리와 에도 니혼바시는 야쿠샤에를 매개로 ‘목판화 맞불 경쟁’을 벌이게 됐다.

야쿠샤에1.jpg 가부키 작품 〈가스가노쓰보네(春日局)> 의 한 장면을 그린 야쿠샤에

도톤보리 좌들의 레퍼토리는 서민의 욕망과 좌절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에도 막부 통제 아래 무사·귀족을 노골적으로 풍자할 수 없었던 작가들은 배경을 교토나 오사카로 옮겼다. 연극 속 주인공은 화려한 금사(錦紗) 의상을 입은 가신이나 공주였지만, 이야기 구조는 대개 오사카 상인이 주도했다.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의(義)와 정(情)의 갈등, 즉 ‘근면한 상인이 무사의 권위나 국가 규칙을 넘어 약자를 구한다’는 테마다. 관객은 극장 건너편 복덕방이나 쌀 도매상에 앉아 있던 자기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았다. 따라서 야쿠샤에에 실린 배우 얼굴은 단순 스타 초상이 아니라, 당대 관객이 꿈꾸던 이상적 자아의 거울처럼 기능했다.

도톤보리 극장가.jpg 19세기말 도톤보리 극장가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과 함께 오사카 가부키계는 거센 변화를 맞았다. 서양식 극장 ‘난바자(難波座)’가 세워지며 가스등이 객석에 들어왔고, 입장권 가격도 계층별로 세분되었다. 인력거꾼은 여전히 싼 자리에서 박수를 쳤지만, 전기 조명 아래 무대를 밝히면 배우의 화장 반복과 동선이 이전보다 자세히 드러났다. 이때부터 오사카 야쿠샤에는 표정뿐 아니라 무대 장치·조명 느낌까지 표현하려고 화판을 키웠다. 색채는 선명해지고 배경에는 빗금이 사라졌으며, 소용돌이치는 먹선 대신 두꺼운 윤곽선으로 배우 실루엣을 강조하는 ‘메이지 신판 우키요에’ 양식이 퍼졌다. 그러나 컬러 석판 인쇄(石版多色刷) 기술이 도입되면서 목판화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값싸게 대량 복제된 석판화 사진이 극장 앞 노점에 쌓이자, 손으로 깎은 목판화는 자연히 박물관 전시품이나 수집가의 사치품으로 옮겨 갔다.


도톤보리 가부키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장 네 곳이 폭격을 맞았지만, 1958년 오사카 쇼치쿠좌(松竹座) 가 재건되며 매년 1월 ‘신춘 가부키’가 상설 레퍼토리로 부활했다. 쇼치쿠좌 외벽 아치형 파사드는 1923년 신고전주의 양식을 그대로 살려, 간판배우 초상 대신 대리석 기둥과 금박 코니스로 도톤보리 옛 연무장의 영광을 암시한다. 최근엔 프로젝션 매핑으로 야쿠샤에 이미지를 대형 간판에 투사해,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옛 목판화의 전통을 짧게 소개한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야쿠샤에 배우가 움직이고, 화면 속 QR 코드를 누르면 도톤보리 연극 연혁과 함께 자막으로 “카도자·다카모토자 터는 지금 음식점과 카페로 남아 있다”는 안내가 뜬다. 기술이 과거의 매뉴얼을 해킹해 도시 풍경에 덧붙인 셈이다.

쇼치쿠자.jpg 오사카 쇼치쿠좌(松竹座). 가부키, 현대극, 춤과 노래,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 예술을 상연.

이제 도톤보리에서 가부키 배우는 더 이상 생계를 잇는 직업이 아니다. 대신 셀카 배경이나 팝아트 소재, 혹은 게임 캐릭터 육성 시나리오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가부키의 과장된 몸짓과 야쿠샤에의 화려한 채색은 여전히 이 도시의 과잉을 정당화해 주는 문화적 면허처럼 기능한다. 회전초밥 접시가 초당 4cm 속도로 물레 위를 돌 때, 간판 네온이 초당 열두 번 깜빡일 때, 그리고 드론 카메라가 수로 위 파노라마를 촬영할 때, 오사카는 오래전 배우가 무대에서 보여 준 ‘미에’처럼 잠시 호흡을 멈춘다. 다음 순간 관객 — 즉 오늘의 여행객 — 은 다시 박수 대신 셔터음으로 응답한다. 가부키와 야쿠샤에가 남긴 ‘과장의 미학’은 도톤보리 네온에 흡수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움직이는 연극처럼 세팅한다.


공연이 끝난 무대엔 늘 막간이 필요하다. 도톤보리도 새벽 두 시 즈음이면 불이 꺼진다. 소리 없는 운하 수면에는 전광판 잔상이 잔물결처럼 번지고, 밤낮으로 오가는 인파가 남긴 열기만이 철제 난간에 희미하게 남는다. 그러나 이 도시의 막간은 곧 다음 장을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다. 두꺼운 화장을 지운 배우처럼, 도톤보리는 새벽 공기를 들이켜고 다시 화장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전 여덟 시, 첫 관광버스가 오사카 시내로 진입하면 수로는 다시 무대로 변한다. 야쿠샤에 목판화 속 배우가 발성 연습을 끝내듯, 네온 간판도 서서히 밝기를 끌어올린다.


과거와 현재, 나무판과 LED, 배우와 여행객이 하루에도 수십 번 서로의 역할을 바꿔 가며 도톤보리를 걷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로는 여전히 ‘예능 허가 구역’이며, 가부키 무대란 말을 몰라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곳을 하나의 극장으로 받아들인다. 도톤보리가 과장을 허락하는 한, 야쿠샤에가 담아낸 배우의 눈빛도 이 물길 위에서 계속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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