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불안한 가치관들 사이에서 우리들의 보편적인 불안이 싹을 틔우니..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안한 존재이고, 그렇다 보니 인간을 배제하고는 기능할 수 없는 문학 또한 불안이라는 근원을 떨쳐낼 수 없다. 그래서 원래의 근거지를 떠나 이식된 존재들에 대한 문학의 구애 또한 어쩔 수 없다.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 이주 노동자나 조선족이 자주 발견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고, 중국계 미국인인 하진이나 인도계 미국인인 (줌파 라히리는 뱅골 출신의 이민자 가족으로 영국에서 태어났고 다시 미국으로 이민하여 성장했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일시적인 문제」.
도시를 어둠에 잠기게 하는 정전만큼이나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왠지 모르게, 딱히 정한 것도 없이, 이런 식이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실망시킨 소소한 일에 대한 고백을 주고받았다...” (p.38) 아이를 사산한 부부의 일상에는 모래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서걱거림 같은 것이 남아 있다. 각자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떼어 놓은 것 같았던 아이가 사라진 자리는 도시의 어둠처럼 짙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하여 혹은 스스로를 향하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일시적인 문제, 일는지 알 수 없다.
「프리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인도 이민자 가족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 오는 파키스탄인인 프리자다 씨... 먼 이국의 땅에서 고국에 두고 온 처자식을 생각하는 프리자다 씨와 그러한 프리자다 씨를 바라보는 미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음 세대인 인도계 소녀의 시선... 파키스탄인을 인도인이, 그리고 그러한 인도인을 미국인이 바라보는 시선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차이들은 얼마나 차이인 것이며 또 얼마나 차이가 아닌 것인가...
「질병 통역사」.
온전히 미국적인 인도인 부부의 인도 방문에 운전사로 참여하고 있는 카파시 씨... 카파시 씨는 이 부부에게서 발견되는 균열의 틈새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이 부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 초로의 운전사에게 그 부인은 이 가족의 엄청난 비밀 하나를 알려 준다. 운전을 하는 것 말고도 병원에서 질병에 대한 설명을 통역하는 일을 하고 있는 카파시 씨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음으로써 어떤 치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듯한 부인의 제스처는 그러나 갑작스러운 원숭이의 공격이라는 상황 안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마무리 된다.
「진짜 경비원」.
예순 네 살의 부리 마는 과거 자신이 인도에서 누렸던 영화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공동주택의 계단 청소부이다. 이와 함께 그녀는 어영부영 이 공동주택의 경비원 노릇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여인은 도둑으로 몰리고, 공동주택의 사람들은 그녀를 몰아 붙인다. “부리 마의 입은 거짓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 새로운 사실은 이 건물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는 거야. 이 같은 건물이 필요로 하는 건 진짜 경비원이라네.” (p.136)
「섹시」.
사촌 형부가 갑작스럽게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는 락스미... 그리고 지금 데브라는 인도 출신의 남자와 잠깐의 불같은 사랑에 빠져 있는 락스미의 친구인 미랜더...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섹시’를 정의하는 아이 앞에서 미랜더는 자신을 섹시하다고 말했던 데브를 떠올리는데...
「센 아주머니의 집」.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만 하면 돼.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목소리를 조금만 높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슬픔이나 기쁨을 표현하면 온 동네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도 반은 와서 소식을 함께 나누고,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p.188)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센 아주머니는 어린 엘리엇을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이런저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 혹은 현대 사회 안에서 센 아주머니는 너무 약한 존재일 뿐이다.
「축복받은 집」.
새 집에 이사를 간 산지브와 트윙클... 트윙클은 그 집에서 기독교와 관련한 이런저런 물건들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집안을 꾸미려 하지만 산지브는 그것이 못마땅할 뿐이다. 종교가 어떤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믿고 있다고 여기는 일종의 장신구가 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우는 소설이라고 할까... 과거의 기복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변질한 것으로는 미국의 기독교나 우리나라의 기독교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비비 할다르의 치료」.
어려서부터 발작을 일으키는 질병에 시달렸고 부모를 잃은 뒤로는 친척 집에 얹혀 살아야 했던 비비 할다르... 하지만 그러한 비비도 남편을 얻고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비의 소망을 친척은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저런 사건을 거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임신을 하게 된 비비,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앓던 질환이 치유가 되었다는 신비한 소설의 스토리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라는 서술자들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인도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자신의 삶의 지형을 옮긴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은 그 중에서도 미국 생활 중 내가 묵었던 공동주택의 아흔이 넘은 크로프트 부인과의 관계가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뱅골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왔고,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한 소설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세 개의 대륙에 터전을 잡아야 했던 그들의 삶에는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싶지만, 이제 그 자식 세대의 관심을 끄는 것은 크로프트 부인이 있었던 공동주택의 월세가 정말 그렇게 쌌느냐 하는 정도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에서 인도계인 주인공들은 노골적으로 이민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들은 오히려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한 인물이며, 그 사고방식들도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이나 부모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되면 (혹은 수평적인 그들 사이에도) 적응했다고 여겨지는 가치관 사이에 어떤 틈이 생기고 거기로 불안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불안들 사이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이 싹을 틔운다.
줌파 라히리 / 서창렬 역 / 축복받은 집 (Interpreter of Maladies) / 마음산책 / 315쪽 / 2013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