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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리처드 브라우티건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결말을 향한 아주 이른 출발...

  “내가 리 멜론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술에 취해 꼬박 밤을 샜다. 새벽이 왔을 때, 우리는 엠바카데로 부두에 있었고 비가 내렸다. 갈매기들은 잿빛 비명을 지르며 깃발처럼 빛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부두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배가 있었다. 노르웨이 배였다.” (p.28)


  무심하게 쓰여진 문장 그러니까 무심코 보여서 적었을 뿐이야, 라고 말하는 듯 툭 내 앞에 던져진 그런 문장들을 좋아한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에서 그러한 문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아, 나도 저런 문장들을 구사하고 싶어, 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는 이즈음 아주 많이 움직이고 그만큼 많이 잔다. 대신 그만큼 덜 읽고 있고, 읽는 것보다 덜 쓰고 있다. 다시 한 번 한숨... 


  “모차르트를 틀어준 일주일 후에 그는 에스파냐로 휴가를 떠났다. 그는 석 달 후에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내 발은 여전히 조용하게 다녔다. 그는 자기가 여기 없어도 쿵쿵거리면 다 아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의 휴가는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길어졌다. 왜냐하면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땅을 불과 몇 피트 남겨놓고 배와 부두를 연결하는 판자 위에서 죽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모자는 미국 땅을 밟았다. 그의 머리에서 벗겨진 모자가 굴러서 입국했기 때문이었다.” (p.44)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블랙 유머들도 나를 즐겁게 만든다. 그 유머들이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갑으로 행세하는 이들을 향한 을의 조롱이 섞여 있어 그냥 넘겨버리지 못한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라는 제목에조차 블랙 유머가 섞여 있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주인공인 리 멜론도 그리고 리 멜론의 할아버지인 오거스터스 멜론도 장군은 아니다. 그러니까 소설에 장군은 없다.


  “문을 열자, 그는 젊은 여자와 함께 침대에 있었다. 그들의 뒤엉킨 발이 침대 한쪽 모서리에 튀어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섹스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그 짓을 끝낸 것 같았다. 방에서는 큐피드의 체육관 같은 냄새가 났다.” (pp.52~53)


  그래도 빅서, 라는 장소는 흥미롭다. 빅서는 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인 캘리포니아에 위치하면서도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1960년대에는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반문화의 요람’으로 유명했고, ‘헨리 밀러의 자서전 《빅서와 히에로니무스의 오렌지들》과 1962년에 출간된 책 잭 케루악의 《빅서》’의 빅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제목을 통해 전쟁 소설, 같은 것을 떠올리면 안 된다. 소설은 그 짐작의 저 끄트머리에 있다.


  “리 멜론의 담배 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담배가 다 떨어지고 더 구할 수 없게 되면, 그는 고르다까지 히치하이크를 해서 갔다. 물론 그에게는 담배를 살 돈이 없기 때문에, 그는 고속도로 갓길을 걸어갔다. 산타루치아 산 옆길을 걸으며 담배꽁초를 주워서 종이봉투에 넣었다.

  때로는 마법의 숲에 있는 버섯들처럼 한 곳에 모여 있는 담배꽁초를 주웠지만, 때로는 담배꽁초를 찾아 1마일을 걸어야만 했다. 드디어 꽁초 하나를 찾으면 그는 여섯 개의 이가 번쩍이도록 입을 벌렸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미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p.138)


  소설은 작가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57년 실제로 빅서에서 머물며 겪은 일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가 그곳에서 함께 하였던 친구 프라이스 던은 실제로 (소설 속 등장 인물의 이름인) 리 멜론으로 불리었고, 그는 그곳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로이 얼의 모델이 된 돈 많은 정신병자를 만나기도 하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연못’이나 ‘태평양의 풍광’ 또한 당시의 여행에서 실제로 보고 들은 것들이다. 


  “우리는 그물 속의 물고기처럼 그녀 뒤에 매달려서 이동했다. 물줄기를 높이 뿜으며 고래 세 마리가 지나갔다. 나는 엘리자베스의 허리에서 시선을 돌려 고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래 물줄기에 남군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기대했다.” (p.201)


  이 소설에는 별다른 줄거리가 없다. ‘나’에 해당하는 제시와 애인인 일레인이 있고, 남부에서 온 장군으로 명명되는 리 멜론 그리고 (실제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그의 할아버지와 애인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의 대략적인 인생 역정 그리고 심드렁한 에피소들로 이루어진 소설이지만 결말은 꽤나 광대하다. 작가에 의하면 소설은 ‘186000개의 열린 결말’로 향하고 있다. 아래의 문장은 그 중 ‘다섯 번째 결말’에 해당한다. 


  “갈매기 한 마리가 우리 위를 날고 있었다. 나는 갈매기가 날아가는 리듬과 그것이 만드는 아치형의 비행 곡선을 느끼며, 손을 뻗어 갈매기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하얀 깃털을 어루만졌다. 새는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p.213)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 김성곤 역 /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A Confederate General From BIG SUR) / 비채 / 223쪽 / 2018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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