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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도나토 카리시 《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어둠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여 생기는 이중의 호칭들...

  《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이하 《이름 없는 자》)는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 3부작의 두 번째 권에 해당한다. 범죄를 주요 소재로 하는 장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르 소설의 특성 상 밀러, 라는 이름의 여자 형사를 주인공으로 공유하고 ( 세 번째 권은 아직 모르겠지만 두 번째 권까지는) 시간 상으로는 첫 번째 권으로부터 몇 년이 흐른 다음이다. (밀러에게는 어린 딸이 있다)


  “이 모든 얼굴은 침묵의 벽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이다. 인종, 종교, 성별, 연령에 따른 차별은 없다. 실종자들의 사진은 이들이 비교적 최근에 남긴 발자취라 할 수 있는 증거에 해당한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찍은 사진도 있고 CCTV 영상에서 뽑은 사진도 있다. 해맑게 웃는 모습도 있지만 자신이 사진 찍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모습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중 그게 자신의 마지막 사진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구는 돌아간다. 그들 없이도. 하지만 림보에서는 그 누구도 이들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들을 잊지 않는다.” (p.36) 


  밀러는 현재 ‘림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실종자 전담반에서 일하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자’는 먼저 밀러가 담당하고 있는 실종자들의 반대편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밀러를 비롯한 실종자들을 찾아나선 이들은 그들을 절대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강력반으로부터 밀러를 호출하는 일이 발생한다. 밀러는 의아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다시 나서게 된다.


  “들창으로 맞은편 집이 건너다보였다. 밀라는 로저 밸린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보려 했다... 당신은 여기서 당신 집을 볼 수 있었어. 그건 병든 어머니를 홀로 방치해두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줬을 거야. 동시에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어머니로부터 약간의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겠지?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왜 돌연 사라져버린 거지? 어디서 지냈던 거야? 그리고 무슨 이유로 다시 돌아온 거야? 뒤늦은 복수는 무슨 의미가 있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어디서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 거지?” (p.89)


  실종자를 ‘이름 없는 자’로 만들지 않기 위하여 애쓰는 밀러가 ‘림보’를 벗어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실종자 중 누군가가 살인자로 등장한 이후이다. 사실 꽤나 천재적인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진가는 바로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발현된다. 실종자에서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됨으로써 이름을 갖게 되는 것 같은 아이러니, 그러나 얽히고 설킨 살인의 이유와 밝혀지지 않는 배후로 인하여 다시금 이름을 잃어가는 아이러니가 계속해서 중첩된다.


  “실종자들은 실질적인 실종상태에 놓이기 이전부터 이미 ‘심리적 실종상태’에 처했다고 봐야 한다. 납치의 경우, 납치범이 처음으로 피해자를 지목하고 미행을 하고 염탐하면서 피해자의 삶을 오염시키는 순간부터 실종사건으로 간주된다. 가출의 경우 잠재적 실종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못마땅하고 거북하고 괴로운 심정은 마치 이루지 못한 욕망, 속을 갉아먹는 상처처럼 잠재적 실종자를 자극한다. 이런 자극에 굴복하는 순간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거라는 건 잘 알지만 딱히 피할 길이나 방법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자극에 이끌려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종의 이유는 결국 과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p.100)


  이 천재적이고 현학적이며 지적인 전개와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재미를 주는 《이름 없는 자》를 읽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속삭이는 자》를 읽는 데 열흘이 걸렸으니 세 배쯤 시간이 걸린 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그러니까 가해자인 범인들과 그 배후 그리고 이들을 쫓는 밀라와 베리쉬에게 드리워진 어둠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어둠의 시기에 있었다. 


  “이런 교주들이 가지고 있는 주요 자질은 바로 카멜레온 같은 모방의 기술입니다. 카이루스는 지난 20년간 교묘히 숨어 다니며 감시망을 빠져나갔으니 이번이라고 특별히 과시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남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두 번째 능력은 바로 엄격한 규율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조에 대해서 만큼은 상당히 헌신적이고 깐깐하면서 엄격하고 단호합니다. 청렴한 의지와 강렬한 통찰력은 결국 이들이 이끌게 될 ‘광신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겁니다...” (pp.304~305)


  시간은 흘러갔고 소설도 모두 읽었다. 어쩌면 내가 익히 알지 못했던 어둠의 습격, 그 시기에 악의 손길이 나를 향해 뻗쳐온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소설 속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이들은 그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여 바로 그 이중의 호칭을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둠의 결과 진폭과 속도가 다르겠지만, 어떠한 어둠도 없이 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어둠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도나토 카리시 Donato Carrisi / 이승재 역 / 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L’ipotesi Del Male) / 검은숲 / 555쪽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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