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과거의 한 때를 기억하도록 만드는,소설로 리메이크된 베스트극장을 보는듯

by 우주에부는바람

*2013년 8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혼자 살던 나의 집에 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던 적이 있다. 애인이던 시절의 아내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는 많은 이들이 밤이 되면 우리집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나의 원룸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포르노와 다르지 않은 친구들의 신혼 여행 비디오를 같이 보았고, 오아시스와 스웨이드의 음악을 들었으며, 커티샥과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 아버지가 부자이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면 성인이 되고 자기 꿈을 꾸며 살기엔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그래, 루저의 푸념이다. 하지만 루저가 너무 많다. 나도, 옆의 김 부장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석이 아버지도 모두 루저다.” (p.95)


하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모두가 이십대이거나 이제 막 삼십대로 접어든 즈음이었다. 그러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십대와 오십대인 김부장과 싸부는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풍기는 루저의 분위기는 당시 우리들이 풍기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루저로 분류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재를 좌절의 눈빛으로 보지 않고, 동시에 미래를 낙관하지도 않는 허장성세의 뉘앙스 또한 비슷하다.


“... 싸부를 좋아하지만 같이 사는 건 다른 문제다.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p.124)


이처럼 과거의 우리집을 닮은, 등단한 만화가이지만 뜨지는 못한 주인공의 집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러기 아빠로 옛날 직장 상사인 김부장이 스리슬쩍 들어온 이후, 과거 주인공에게 스토리를 가르쳐 주었던 싸부가 또 다시 집을 옮기고, 여기에 고시원에 살면서도 호시탐탐 우리집을 방문하는 삼척동자까지 시차를 두고 우리 집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어느새 백수들의 놀이터가 된 나의 옥탑방.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더 이상 고요한 옥탑의 아침은 사라지고 없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일제의 침략에 점령된 뒤 겪은 식민지 백성의 슬픔이 이러했을 터. 실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p.143)


여기에 집주인인 슈퍼할아버지 또한 아무 때고 불쑥불쑥 쳐들어오고, 슈퍼할아버지의 손자인 석이가 담배를 피는 장소도 옥상이니 그야말로 서울에서도 최강의 인구밀집도를 자랑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구밀집도 속에서도 나는 한 여자와의 헛된 정서 교류를 시작하고 끝내는 과정까지 거치게 되며, 이 지긋지긋한 공간을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집을 구하다가 또 다른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잘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옥탑방에 둘을 들인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들이 가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상대적으로 방의 인구밀도도 줄어들었다. 잠을 자는 시간이 달라졌기에 김 부장도 텐트에서 안 자고 방으로 합류했고.” (p.276~277)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대상 수상작은 따로 있다) 소설은 그대로 가져다가 베스트극장류의 단막극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대중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성에 가미되어야 할 문학적 흥은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 작용하는 소설이 갖는 문학적 아우라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소설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미 서점에는 이런 식의 출판물들이 즐비하다) 그러하니 문학상 수상작으로 적당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잠시 가지기는 하였으나, 소설 내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소설 외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싶으니 아이러니다.



김호연 / 망원동 브라더스 / 나무옆의자 / 343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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