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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친절하지 않아도 여실히 드러나는 소설의 속살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세네갈 출신 흑인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가 과거 식민 지배의 가해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쓴 소설이다. 작가의 네 번쩨 소설이었고 작가는 이 소설로 2021년 공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의 시작에 ‘얌보 우올로구엠을 위하여’라는 헌사가 붙어 있는데, 이는 소설 속 T.C. 엘리만의 모델이 바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 얌보 우올로구엠이기 때문이다. 


  “... T.C. 엘리만은 고전이 아니라 컬트였다. 문학적 신화는 게임판과 같다. 그 판에서 엘리만은 세 가지 으뜸 패를 가졌다. 우선 알 수 없는 이니셜로 된 이름을 골랐다. 이어 단 한 권의 책을 썼다. 마지막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p.18)


  소설의 가장 바깥 껍데기는 미스터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의 중심에 T.C 엘리만이라는 작가와 그의 단 하나 뿐인 작품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있다. 소설은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로 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디에간 라트리 파이를 가장 먼저 일인칭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오래전 관심을 가졌던 작가와 작품이 어느 순간 불쑥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소설은 빠르게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 아무 의미 없네. 내가 충고 하나 할게. 위대한 책에 대해서 그 책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절대 말하려 하지 마. 아니면, 할 거면, 가능한 대답은 단 하나야. 아무것도 아니다. 위대한 책은 아무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 하지만 그 안에 다 들어 있지. 어떤 책이 위대하다고 느껴지거든 절대 그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말하려 하지 마. 그건 의견이란 것이 네 앞에 내미는 함정이야. 사람들은 책이라면 꼭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에간, 뭔가에 대해 말하는 건 보잘것없거나 시시하거니 진부한 책들뿐이야. 위대한 책은 주제도 없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 단지 무언가를 말하려고 혹은 발견하려고 애쓰지. 그 단지가 이미 전부야. 그 무언가가 이미 전부이고.” (p.54)


  미스터리라는 겉껍질을 살살 벗겨내면 또다른 모양의 속살이 드러나게 된다. 나에게 엘리만의 소설을 건넨 것은 시가 D. 라는 소설가인데, 소설을 읽고 또 읽은 나는 그녀를 찾아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고, 엘리만의 가계를 둘러싼 길고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세누 쿠마흐와 아산 쿠마흐, 그리고 모산을 통하여 엘리만으로 이어지는 현대적인 설화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 내가 앞으로 엘리만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오직 글을 쓰기 위해서일 거야. 그 이야기를 나는 직접 살았잖아. 내가 오늘 밤 너에게 한 이야기는 글로 쓰이길 기다리고 있어. 한 권, 혹은 여러 권의 책이 되겠지. 언젠가 난 나의 책을 쓸 거야. 그 외는 전혀 관심 없어. 엘리만은 오래전에 죽었다. 엘리만은 살아 있고 103세다. 엘리만은 무언가 남겨두었다. 엘리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엘리만은 실제 인물이다. 엘리만은 신화다. 다 상관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엘리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어. 다른 어떤 삶보다, 심지어 내가 실제로 겪은 삶보다 더 강력한 삶으로 살아 있지. 그러니 실제가 어떻든 상관없어. 어차피 진리 앞에서 현실은 늘 너무 초라하잖아...” (p.381)


  하지만 이 소설의 속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지식인이 그 가해국으로 넘어와 겪게 되는 양가 감정의 다양한 표출 방식 또한 이 소설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의 엘리만이 겪었고, 어쩌면 현재의 나와 동료들이 겪고 있는 지도 모르고, 소설 바깥으로 넘어와 실재하는 인물 얌보 우올로구엠이 겪었던 일들이 여기에 속한다. 


  “... 결국 엘리만은 누구였을까? 그는 식민지화가 만들어낸 극단의 비극적 결실이야. 식민지화의 성과 중에서 아스팔트 깔린 도로들과 병원고 교리문답 학교보다 훨씬 훌륭한 가장 눈부신 성공이었지... 하지만 엘리만은 바로 그 식민지화가, 끔찍할 수밖에 없는 그 과정이 피식민자들 안에서 무엇을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해. 엘리만은 백인이 되고 싶었고,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너는 백인이 아니라고,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녀도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다고 알려준 거야. 엘리만은 백인이 되려고 모든 문화적 담보물을 제시했는데 세상은 그를 흑인의 자리로 돌려보냈지. 그는 어쩌면 유럽인들보다 유럽에 대해 더 통달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 끝은? 엘리만은 익명으로 사라졌고 지워졌어. 너도 알다시피 식민지화는 피식민자들에게 황폐와 죽음과 혼돈을 심어.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건―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 거야. 엘리만이 그랬어. 소외의 슬픔이지.” (p.496)


  시작 즈음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나면 오히려 읽기가 더뎌진다. 형식적으로 다층의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서술의 방식 또한 친절하지 않다. 여러 인물이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때때로 아니 자주 현학적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일본과 우리의 관계와 닮아 있어 그 이해가 막연하지 않다는 점인데, 어쨌든 읽는 동안 간간이 굉장하다, 는 감탄이 나오곤 했다.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Mohamed Mbougar Sarr / 윤진 역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La plus secrete memoire des hommes) / 엘리 / 550쪽 / 20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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