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1F/B1 일층, 지하 일층》

도시의 야생성을 파고드니 이러한 괴담이...

by 우주에부는바람

한 개의 소설을 제외한다면 주로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소설들이 실려 있다. 몇몇 소설은 특히 우리들의 도시가 가지는 야생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일종의 도시괴담이라고 할만한 소설들 몇 편이 만들어졌다. 이 작가의 쓸모 없어 보이는 상상력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도시괴담들을 보면서 그 평가가 아직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처음처럼 임펙트가 있지는 않지만...) 거대하고 철학적인 대신 미시적이고 유치한 이 작가의 상상력은 쓸모 없는 것으로서 나름의 쓸모를 갖는다. 모두가 쓸모 있는 것에 몰두함으로써 과잉소비되는 (문학적) 엄숙함을 날려 버리는 데에 꽤 쓸모가 있다고 한다면 궤변이려나...


「C1+y=:[8]:」.

정글을 탐험하다가 긴허리아기말원숭이에 의하여 구조된 전력이 있는 나는 이 도시 또한 하나의 정글로 여기고 있다. 그런 나는 어느 날 이상한 위치에 존재하는 낙서를 발견하는데, 그것을 따라가다가 도시를 질주하는 스케이트보드와 맞닥뜨리게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완벽한 물건이라고 여겨지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일단의 젊은이들과의 조우가 엉뚱하지만 그럴싸하다.


「냇가로 나와」.

성석제나 김종광의 소설로 착가할 수 있을만한 단편이다. 소설집에 실려 있는 다른 소설들과 그 궤를 조금 달리한다고 보여진다. 하마까,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전설적인 학생과 통나무 김씨 사이의 우정이라고 하면 너무 단순하고, 철지난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현재를 위무한다고 하면 너무 멀리 간 해석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읽다 보면 배시시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데, 스피디하게 치고 받는 대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머 덕분이다.


「바질」.

일종의 도시 괴담류 소설이다. (이토 준지 만화가 살짝 떠올랐다.) 지윤서와 박상훈은 헤어진 연인이다. 헤어진 이후 지윤서는 스위스 출장 중에 바질의 씨앗을 사왔고, 박상훈은 헤어지기 이전처럼 퇴근 길에 지윤서의 집을 매일 방문하였다. 그렇게 지윤서는 집으로 돌아오고 바질을 심었다가 제대로 크지 않아 창밖으로 버리는데 거기서부터 괴담이 시작된다. 토착식물을 공격하는 외래종 식물이 아니라 인간을 공격하는 외래종 식물 쯤이라고 해야 할까. 읽다보면 이미지가 잘 그려지기는 한데, 조금 만화스럽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비슷한 설정의 영화에 대한 내용을 최근 본 것 같다. 그러니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사고 파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 소설은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2021394200,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2021394200시간 남은 한 남자와 9,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99시간 남은 소녀의 무용담이다. 다르게 보면 조금은 변형된 킬러와 소녀, 그러니까 레옹 류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겠고...


「1F/B1」.

표제작이다. 제목은 말 그대로 1층과 지하 1층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층인 것도 아니고 지하 1층인 것도 아닌 그 사이의 지점을 의미한다고 해야겠다.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겠다. 사실은 이러한 설정을 가져다가 소설을 구상해본 적이 있다. 학교 앞에 서식하던 바바리맨이 적당히 타협하여 옷을 풀어 헤치지 않는대신, 어느 여고의 1층과 2층 사이, 그 오르는 계단과 계단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허가를 받게 된다는 그런...) “...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일층과 이층 사이, 이층과 삼층 상, 삼층과 사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pp.202~203) 여기서 우리는 건물 관리인들을 말하는데, 그러니까 소설은 이러한 건물 관리인들의 이야기이다.


「유리의 도시」.

“... 하늘에서 뭔가 떨어질 때는 땅에다 그림자를 만들게 마련이지만 유리는 그렇지 않았다. 빛을 가로막지도 않았고, 그림자가 생기지도 않았다. 추락 예상 구역의 땅에다 빛나는 사각형을(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빛나는 마름모를) 만들었을 뿐이다...” (p.207) 소설은 대형 건물의 대형 유리가 이유 없이 땅에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을 주축으로 진행된다. 도시의 마천루는 그 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대형 유리들로 번쩍거리고 있는데, 정말 그 유리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고 보니 끔찍하다. 이러한 사건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작가는 알루미노코바륨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은 아니다. 여하튼 우리 현실 안에 유리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크랴샤」.

아마추어 마술사가 동료와 함께 만들게 된, 건물을 사라지게 만드는 데이비드 카퍼필드류의 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마술과 관련된 기가막힌 트릭이 소개되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마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우리 도시의 해체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 라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김중혁 / 1F/B1 일층, 지하 일층 / 문학동네 / 305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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