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주입하여 소진되는 의미가 아니라 저절로 주입되고 배포되는 의미를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한강의 『몽고반점』이다. 기존에 한강의 작품이 보여주었던 우울 모드의 주인공들이나 상황 설정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로테스크한 탐미주의의 색채를 극한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엉덩이를 보았다. 토실토실한 두 개의 둔덕 위로 흔히 천사의 미소라고 불리는, 옴폭하게 찍힌 두 개의 보조개가 있었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런 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하지만 그것은 문제라기보다는 그녀의 야생성 혹은 식물성에서 기인하는, 처제와 그녀에게 강한 자극을 받는 형부 사이의 교합은 이루어질까... 육체나 정서의 야만과 예술의 야만이 비디오 아트라는 고도의 테크니컬한 형식과 교차 혹은 충돌을 일으킬 때...
이혜경의 「도시의 불빛」.
불빛 들지 않는 그러나 불빛 존재하는 도시의 밤, 그 사이를 유영하는 여러 현대인들의 초상을 보여주려는 의도 분명해 보이지만, 그다지 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때때로 난감한 지점에 봉착할 때, 바로 그 난감함으로 읽게 되는 소설...
윤영수의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할인매장 지하식품부에 일하는 양미 씨의 귀여운 연애이야기, 라고 여겼다가는 뒤통수 맞게 된다. “...현수 씨, 나, 착하지 않아. 월급을 받을 때마다 너무 억울했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매일매일 속상하고 원통했어. 조폐공사에서 나온 빳빳한 새 돈, 내가 번 돈, 그 돈을 나는 건드릴 수도 없었어. 동생들 등록금을 대야 했고, 쌀을 팔고, 연탄을 들여야 했어. 차비도 아껴야했어. 버스를 갈아 탈 일을 줄이느라 아침저녁으로 두세 정거장은 걸어 다녔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자신의 가족에게서 이심전심으로 배신을 당하는 착한 양미 씨는 결국 텔레비전 속 남자 주인공의 연인이 되어, 홀로 자신만의 연애에 고군분투하게 된다. 저렴하고 가련한 삶, 외모도 돈도 배경도 그 어느 것도 가진 것 없는 한 여자의 슬픈 연애 이야기다.
이만교의 「표정 관리 주식회사」.
5-6세 수준의 표정 관리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한 사내 씨의 인생역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왕따도 당하고 여러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였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 표정 관리의 지체아였던 씨는 하지만 각고의 노력을 거쳐 결국 유명한 모델로까지 성장할 뿐만 아리나 표정학(호오, 재밌는 생각, 그런데 설마 정말 이런 게 있나?)의 대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 씨의 주장에 따르면 표정이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표정에 대한 가장 고질적이고도 오래된, 소박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표정은 감정과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표정을 통해 거꾸로 감정과 본심까지도 제어할 수 있다. 나아가 표정은 표정이고 감정은 감정이어서, 표정과 감정의 분화가 얼마나 세련되고 세분화되어 있으며 자율적이냐가 곧 그 사회의 문화성숙의 지표라는 것이다...” 대중 문화 더 나아가 현대 문화(하지만 현대의 모든 문화야 대중 문화가 아니던가)의 심곡에 대한 색다른 보고서 즈음의 소설이다.
김경욱의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다 운명했다. 운명하기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볼륨을 높여라...”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감행한, 아버지에게는 우스운 자식이었고, 직장에서는 어중띤 직장인이었던 나는 이제 침대의 한 부분이 움푹 패일 정도로 자리에 누워 공중파 채널을 비롯해 신청한 수십개의 케이블 채널을 섭렵하며 지낸다. “...텔레비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남 앞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는 나로서는 존경하고 싶을 지경이다. 토요일 열두 시 십 분부터 한 시 십 분까지 공중파 채널을 켜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텔레비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일일 동안 방영되었던 가장 선정적이고 가장 폭력적인 장면들을. 수많은 프로그램들 중에서 엄선된 장면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왜 하필 이 시간일까.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한다면 더욱 존경과 찬탄을 받을 텐데. 게다가 왜 동시에 고해를 하는 것일까. 서로 다른 시간에 방영한다면 나는 각 방송사들이 엄선한 지난 한 주의 가장 선정적이고 가장 폭력적인 장면들을 모두 볼 수 있을 텐데...” 그러한 이러한 기발한 착상에까지 도달하는 것 아닐까. 나비, 광고 기획, 마키아벨리, 텔레비전, ‘가난한 운명’의 그녀까지... 이물감 가득한 소재들이 아슬아슬하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천운영의 「세 번째 유방」.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를 가까이서 조사해 보면 세 개의 유방이 나타난다지. 젖꼭지가 없고 작은 유방 봉우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오른쪽 유방 위 겨드랑이 근처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설명을 너 또한 읽었을 거야.) 세 번째 유방이 중세 시대 마녀 짓에 누명을 씌울 근거가 되었다는 것과,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숨겨진 젖꼭지를 찾느라 몸 구석구석을 수색했다는 이야기들. 마녀들은 두 개 이상의 젖꼭지가 있어 그걸로 심부름꾼을 먹여 살렸다고 믿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네가 세 번째 유방을 좋아했던 것은 먼 옛날 야생의 흔적이어서가 아니라 마녀의 표식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었던 할머니의 젖꼭지, 그리고 내가 성장한 이후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었던 너의 세 번째 유방의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 그 남성성으로부터 배척받았던 나는 결국 너의 세 번째 유방, 그 여성성으로부터도 결국 내침을 당하고 말게 된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甲乙考試院 체류기」.
박민규답다. 가세의 급락과 함께 여기저기를 떠돌다 결국 고시원 한 켠에 둥지를 튼 주인공은 혼자만의 공간인 동시에 바로 옆 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곳 생활 중에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역시 깨달음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가능)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考試와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꽤 실용적이지 못한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살아간들 우리는 고시원의 방 한 칸, 그 ‘밀실’과 같은 선체험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한강 (이혜경, 윤영수, 이만교, 김경욱, 천운영, 박민규) / 2005 제29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사상사 / 378쪽 / 2005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