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같은 문장으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이야기 이음새의 어떤 헐거움..
*2011년 11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작가는 최근에 발표한 <공무도하>와 <내 젊은 날의 숲> 이후 다시 훌쩍 조선시대로 돌아갔다. 소설은 영조와 정조를 거쳐 이제 임금에 즉위한 순조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대왕대비 정순 왕후 시절의 이야기이다. 영정조 시절부터 나라에 퍼지기 시작한 천주교를 사학이라 부르며 발본색원하려 한 대왕대비마마의 박해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 매는 곤장이 몸을 때려야만 무엇인지를 겨우 알 수 있는데, 그 앎은 말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은 읽은 자로부터 전해들을 수나 있고, 책과 책 사이를 사념으로 메워나갈 수가 있지만, 매는 말로 전할 수 없었고, 전해 받을 수가 없으며 매와 매 사이를 글이나 생각으로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는 책이 아니라 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보다는 학정에 시달리는 민중의 수난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는 박차돌이나 그의 밀고로 붙잡히게 되는 아리를 비롯한 아낙들, 그리고 정씨의 처조카인 황사영을 보필하던 육손이나 김개동을 비롯한 수많은 민초들이 겪는 수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욱이 이들이 어째서 천주교라는 새로 들어온 종교에 그리 쉽게 포섭되었는지, 그 연유를 밝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국 이래로 국본이 이토록 망가진 적은 없었는데, 첫째는 굶주려서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의 참상이고 둘째는 무민하는 요언의 창궐이었다. 요언의 뿌리는 굶주림이었고, 그 두 가지는 실상 한 가지였다. 요언이 썩은 고기의 구더기처럼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썩은 고기는 바로 굶주림이고, 그러므로 요언은 일없이, 저절로 생거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상들은 누구나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작가는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에게 소설의 한 켠을 내주고 있다. 그 유배의 생활을 통하여 그 한갓진 섬의 관리들에게까지 만연해 있는 뿌리 깊은 (당시) 국가 조직의 부패상을, 그리고 민중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다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역할을 정약전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그곳에서 만난 청년과 함께 작성하는 <자산어보>, 자신을 돌보던 사람들과 나누는 정이 슬쩍 한 자리를 차지한다.
“.. 물소리 너머의 바다에서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고 문자가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과 언어가 생겨나지 않은 세상 중에 어느 쪽이 더 무서운 것인가. 물소리 저 너머에서 인간이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말이 아니라 목숨과 사물 속에서 스스로 빚어지는 말들이 새로 돋아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말들을 찾아서 인간의 삶 속으로 주워 담을 수 있을 것인지, 어둠 속에서 정약전의 생각은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전체적으로 뭔가 정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간 김훈이 보여주던 추상같은 문장은 여전하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의 진행은 산만하다. 다양한 민중들의 삶을 고루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 사이사이 정약전의 유배, 황사영의 도피, 정씨 형제들의 우애가 너무 깊숙이 발을 담고 있다. 게다가 소설을 굴리는 이 두 바퀴 사이를 연결시키는 축 또한 천주교라는 사학의 존재와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으로 양분되고 있으니 그 나아가는 방향이 갈피를 잃고 있다는 느낌이다. 심사숙고와 진중한 노력이 가득한 단어와 문장의 사용만큼 그 전체적인 틀거리에도 좀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훈 / 흑산 (黑山) / 학고재 / 407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