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오, 윌리엄!》

작가의 정직함으로 독자의 여운을 만들어내는...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덧붙인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책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그 문장들에 앞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루시는 ’오 윌리엄!‘이라는 생각을, 그리고 동시에 ’오 윌리엄!‘은 ’오 루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그렇게 신화이고 신비로우며 미스터리인 윌리엄과 루시는 우리에게로 확장되고 이어진다. 


  “우리가 헤어질 때 딸들은 내게 키스하고 나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대화를 나눈 뒤 마음이 몹시 심란했지만, 딸들은 특별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p.125~126)


  소설 내부에서 나, 루시는 아주 명확한 사실들만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루시 자신의 주관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그러니까 루시가 보기에 그러하다, 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다룰 때는 무척 조심스럽다. 어느 때는 자신은 잘 모른다고 밝히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보기에 그렇다, 라면서 조심스러워 한다. 루시의 명료한 개입이 우리들 각자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아우라를 파괴할까 저어하는 작가의 명료한 개입일 터이다.


  “우리는 결혼해서 거의 이십 년을 같이 살았고, 그런 뒤에 내가 그를 떠났고, 우리에겐 딸이 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 친하게 지내왔다―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이혼에 대해서라면 끔찍한 이야기가 많지만, 헤어짐 자체를 제외하면 우리 이혼은 그렇지 않았다. 이따금 나는 헤어짐의 고통과 그것이 내 딸들에게 일으킨 고통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지금 여기 살아 있으며, 윌리엄도 그렇다.” (pp.10~11)


  소설 속에서 윌리엄은 일흔한 살이다. 세 번째 부인과 살고 있으며 어린 딸 브리짓이 있다. 윌리엄과 나, 루시 사이에 크리스와 베카라는 이미 성장하여 가정을 이룬 두 딸이 있다. 루시는 작년에 남편 데이비드를 병으로 잃었다. 나와 윌리엄이 헤어진 것은 윌리엄이 다른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부부의 집을 자주 방문하였던 조앤이라는 포함되어 있었다. 나 또한 가정이 있는 다른 작가를 만났다. 


  『윌리엄이 한 손을 들고 말했다. “루시, 누구든 머릿속은 다 비열해 맙소사.”

  “그래?” 내가 물었다.

  그러자 윌리엄이 어정쩡하게 웃었는데, 그렇지만 기분좋은 웃음이었다. “그래, 루시, 다들 머릿속은 비열해. 혼자 하는 생각 말이야. 그런 건 흔히 비열한 생각이야. 당신은 아는 줄 알았는데. 작가잖아. 오 맙소사, 루시.”

  “음.” 내가 말했다. “어쨌거나 당신이 비열한 건 오래가지 않아. 늘 사과하니까”

  “늘 사과하는 건 아니야.” 윌리엄이 말했다.

  그리고 그 또한 사실이었다.』 (PP.196~197)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루시는 우리들 모두를 신화, 신비,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밀어 넣으며 동시에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하였다. (나는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라고 말하는 헤라클레이토스를 떠올렸다.) 소설 전체를 통해 윌리엄을 바라보고 윌리엄과 부대끼고 이제 윌리엄과 여행을 떠날 예정인 루시는 이제야 윌리엄을 깨닫는다. 파악할 수 없는 혹은 파악하려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존재로서...


  “늦은 아침에, 나는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면서 케이맨제도에 가져갈 옷을 침대 위에 꺼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중간중간 멈추고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물론 윌리엄이 다른 곳이 아니라 그곳에 같이 가자고 한 이유를 알았다. 나는 캐서린이 그랬던 것처럼 라운지체어에 윌리엄과 나란히 햇볕을 받으며 앉아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그 역시 제인 웰시 칼라일에 대한 책을 읽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나는 우리가 틈틈이 책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책을 집어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p.297)


  《오, 윌리엄!》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루시 바턴을 화자로 내세워 쓴 두 번째 작품이다. 2016년에 작가는 이미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바 있다. 그런가 하면 2017년에 발표한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연작 소설집은 루시 바턴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우리들 삶의 불완전하고 그래서 순수하고 원초적인 측면을, 매우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고 나면 여운이 길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오, 울리엄! (OH WILLIAM!) / 문학동네 / 309쪽 / 2022 (2021)

매거진의 이전글 요코미조 세이시 《이누가미 일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