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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12. 2024

《존 치버의 일기》존 치버

한 가족의 가장으로, 알코올중독자로, 양성애자로 그리고 소설가로...

  타인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주는 만만치 않은 재미가 있다. 어쩌면 관음증의 일환이다. 그 타인이 존 치버와 같은 작가라면 이 즐거움은 배가 될 수도 있다. 유명인의 사생할을 들여다본다는 두근거림을 닮은 것이지만 똑같지는 않다, 라는 자기 합리화도 가능하다. 잘하면 문학의 심장부, 글쓰기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시원을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완전히 멈추지 않고, 그럭저럭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써왔다. 물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오래전 일기장을 버렸다. 오래전 나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어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부터 일기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기를 아예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정확히 일기를 쓰는 대신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는 와중에 일기를 쓰는 태도를 살짝 덧입혔다. 


  몇 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일기라는 것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현재를 적어내는 일기와 과거를 기억하는 대로 쓰는 메모아르(Memoir), 두 가지의 형식으로 이를 수행할 생각이었다. 《존 치버의 일기》를 읽으면서 어서 이것들을, 그러니까 일기와 메모아르를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생겼다. 마음을 먹으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타입은 아니어서, 라고 말하고 보니 어느 때는 강하게 그런 타입이기도 하지만,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일기장 원본은 낱장을 떼어낼 수 있는 작은 공책에 쓴 것으로 한 권이 한 해의 일기를 담고 있으며 직접 손으로 쓴 경우도 물론 있으나 대개는 (서툴지만) 타자로 친 것들이다. 치버는 대부분의 일기에 일자를 표시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도 이를 생각했다. 이 책에는 매 페이지마다 언제 쓰인 일기인지 알 수 있도록 연도가 표시가 된바, 이는 원래 일기장의 표지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때론 추론에 의한 것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일기는 역시 치버가 쓴 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1982년 6월 18일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수일 전에 쓰인 일기다.)” (p.916) - 편집자의 말 중


  일기는 1948년, 존 치버가 서른 일곱 때부터 시작하여 1982년, 존 치버가 일흔 한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된 기록이다. 실제로 존 치버가 남긴 일기 중 약 20% 정도가 편집자인 로버트 고틀립에 의하여 발췌된 것이다. 일기의 시작은 1948년인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기 등 몇몇 부분은 편집자에 의하여 제외되었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 연도가 살짝 뒤바뀌는데, 그것 또한 편집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다.


  마흔 살 무렵부터 일흔 한 살로 죽기까지 삼십 오 년 정도의 기록인 책에서 우리는 존 치버의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내 메리와는 정서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끊임없이 불화한다. 이혼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금세 포기하는데, 존 치버는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큰 방점을 찍는다. 아마도 행복하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세 자녀가 누려야 할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와 함께 알코올 문제를 지니고 있는 형의 존재 또한 존 치버를 오랜 시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늙어 치료 센터에서 술을 끊기 전까지 존 치버는 평생을 술과 함께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침부터 마시기도 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버티지만 결국 오후에는 술을 마시고 만다. 그는 끊임없이 글을 쓰지만 그만큼이나 끊임없이 마신다. 술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이런저런 실수에 괴로워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아내 몰래 술이 있는 저장고에 가서 술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족 그리고 술과 함께 존 치버를 평생 따라다닌 문제는 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존 치버는 양성애자였다. (커밍 아웃하지 않았고, 이런 사실 때문에 일기를 출판할지에 대해 아들인 벤은 고민하였다.) 그는 일기를 통하여 자신의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에 대하여 여러 차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평생에 걸쳐 여러 명의 남성 그리고 여성과 관계를 맺고, 그들은 책에서는 이니셜로 등장한다.


  가족과 알코올, 그리고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제외하고, 일기의 나머지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 혹은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적고 있다. (일기의 많은 부분에 직접적인 소설이 담겨져 있었고, 편집 과정에서 이 부분들은 빼버렸다고 한다.) 그는 소설내적인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고, 소설외적인 부분에서 문학인으로 살아내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는 솔 벨로에게 오래도록 경쟁의식을 느낀 것 같고, 소설가로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책에 실려 있고, 나는 이 작가의 평범하고 직설적인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존 치버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일은 소설에 맡기고 휴가를 떠나요》라는 소설집에 여러 작가와 함께 실린 단편 소설 하나를 읽은 것이 전부이다), 일기라는 형식에 실린 이 작가의 문체가 소설에서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래에 일단의 문장들을 일단 옮겨 놓기로 한다.


  “잘 쓸 것, 정열적으로 쓸 것, 좀더 자유롭게 쓸 것, 좀더 너그러워질 것, 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질 것, 욕망의 물리적 힘뿐 아니라 그 지배력에 대해서도 인지할 것, 글을 쓸 것, 사랑할 것.” (p.43) - 1948년


  “나는 연민이라는 달콤한 정취를 내 마음대로 불러내진 못하지만, 우리가 경험해본 바와 같이, 인생이란 한 교환을 통해 잃는 것이 다음의 교환에 의해 채워지는 것보다 더 많은 창조적인 힘(이는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유용되게 이용됨을 뜻한다)이며, 또 우리를 사악함과 어둠과 분노의 길로 이끄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 및 우리가 가진 불쌍한 오해뿐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p.95) - 1953년


  “... 이따금 나는 쓸모없는 많은 감정의 수화물들을 짊어지고 여행한다. 배고픔, 갈증, 근심, 공포가 그것으로, 분명 나의 생각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나 자신을 이 도시와 친숙하게, 그리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이는 문학적인 차원에서의 얘기는 아니다...” (p.182) - 1956년 


  “... 지난 석 달간은 돈을 벌기 위해 세 편의 단편을 쓰며 지냈다, 정말로.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 대해 증명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보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전부 낭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p.289) - 1959년


  “.. 오전에 A가 여행과 강연 계획을 취소하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난 침대 옆에 서서 오른손으로는 전화기를, 왼손으로는 나의 그것을 쥐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다.” (p.299) - 1960년


  “C와 밤을 함께 보냈다. 어떡해야 좋을까? 태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회의 비난, 즉 처벌의 위협을 실감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내 본능에 따라서, 또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과 성애를 향한 곤혹스러운 허기를 덜기 위해서 신중히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님을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음을 믿는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는,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하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일지 모른다.” (p.333) - 1960년


  “... 어릴 적부터 나는 여러 사실들을, 이를 좀더 재미있고 때론 의미 있게 만들고자 재정렬하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리하여 괴짜인 노모를 부와 명예가 있는 여인으로 탈바꿈시켰고 아버지는 바다의 선장으로 바꿔놨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 (p.363) - 1961년


  “... 나는 비도덕주의자이며 이런 나의 실패는 용인될 수 없는 결혼을 용인하는 데 있었다. 멋진 집과 사랑스러원 아이들의 목소리에 대한 내 선호가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 나는 이 계약을 수년 전에 파기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미인과 함께 도망쳤어야 했다. 나는 가야만 한다. 가야만 한다. 하지만 과수원에 있는 아들을 보면서 내겐 자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결코 몰랐고 바로 이런 사실이 나를 그토록 강력하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내몰았기에 내게 선택의 여지란 전혀 없다...” (pp.411~412) - 1963년


  “... 나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근심, 위스키에 대한 갈증, 그리고 결혼생활의 쓰디쓴 불가사의로 고통받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p.471) - 1965년


  『누군가 새로 내린 눈 위에 뭔가를 적어놓았다. 누구일까? 우유 배달원? 꼬마? 아니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 그리고 뭐라고 썼을까? 외설적인 말? 중상모략? 낯선 사람이 써놓은 글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 세상아!”』 (p.478) - 1966년


  “(바람직한상태는 아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어 옛날 일기장 두 권을 읽었다. 그중 활력이나 날씨에 관해 쓴 글들은 내게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반면, 두 가지 주제의 글들이 놀라울 정도로 경쟁하듯 빈번히 등장했는데 하나는 알코올에 관한 것이고 또하나는 아내에 관한 것이었다. 알코올의 경우 이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했지만 보다 경악할 만한 사실은 (지난 10년 동안) 내가 저장고에서 술을 몰래 가져왔던 날들의 숫자였다. 결혼과 관련해서도 많은 일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 가장 유용한 것은 결혼에 대한 관점으로, 그것은 그리 즐겁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그 관점이란 다음과 같다. ‘이 결혼이라는 대륙을 얼마나 넓은가, 또 그에 따르는 부담이란 얼마나 복합적인가.’ 결혼에 관한 한 정감과 지성이 내겐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일기장에는 성행위와 열렬한 사랑이 가져다주는 환희에 관한 글들도 많이 보였지만 그보다는 퇴짜를 맞았다는 글이 믿기지 않을 만큼 더 많았다. 일기를 읽으며 곰곰이 회상하니 말 그대로 고통스럽다...” (pp.567~568) - 1968년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자기파괴적인 천직이 아님을 확신해야만 한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기를 바라지만 솔직히 확신은 못하겠다. 글은 내게 돈과 명성을 가져다줬으나 그것이 나의 음주 습관과 관련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 알코올이 주는 흥분감과 판타지가 주는 흥분감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p.591) - 1968년


  “... 오늘 아침엔 몸 상태가 좀 나아졌지만 난 경미한 심리적 복시 현상을 겪었다. 즉 나는 내 의식의 가장자리에 있는 우울증을 목격했는데 그 우울증은 식별 가능한 형상이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맛에 더 가까웠다...” (p.664) - 1972년


  “... 나는 나 다음에 올 사람보다 낫진 않지만 과거의 나 보다는 낫다.” (pp.744~755) - 1976년


  “우리의 사랑 중 일부에는 어느 정도 거짓이 있기 마련이지만 특히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그 과장이 가장 심한 것처럼 보인다. 처키는 18년 전 한 지역에서 열린 3라운드짜리 권투 시합에서 2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로서는 결코 될 수 없었던 우승자였기라도 한 양 한증막에서 거들먹거리며 다닌다. 이 때문에 (젊든 아니든) 그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남성적인 권투의 세계로 옮겨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는 일부 늙은 매춘부들이 『플레이보이』 잡지가 한창 잘나갈 때 그 잡지 속의 주요 화보로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정말로 화보 모델이었던 여자들은 정작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환영과 후회를 품을 때 (내 생각엔 불미스럽다 할) 과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조만간 그림자처럼 자취만 남겠지만 그렇다고 없어지진 않는다.” (p.791) - 1977년


  “예전 일기를 읽어보니 남성적인 면이 부족하다며 메리가 내게 화를 낸 적이 있음을, 또 메리의 실망은 꽤 컸음을 알게 됐다. 그녀의 팔에 안겨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내 모습도 적혀 있다. 일기장에는 제멋대로인 나의 그것에 관한 일들이 솔직히 기록돼있으며 이는 내 삶이 지닌 풍부함의 일부다. 난 사랑받을 때 이에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듯하다. 내 작품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바로 그런 사랑을 찾는 데 내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한다.” (p.815) - 1979년


  “...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던,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웃음기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의 아내는 28년 전의 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에 아내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결코 회복하지 못한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움으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누그러뜨리기 힘든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가에 관한 하나의 진술이다...” (p.879) - 1981년


  “... 이번에 내린 눈은 오랜 평생 처음으로 어떤 식으로든 스키를 탈 수 없는 바로 그 첫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스키나 썰매를 타지 못함은 물론 인도에 쌓인 눈도 치우지 못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개들에게 이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 개들의 무덤덤한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가?’” (p.894) - 1982년


  “40년 만에 처음으로 일기에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나는 아프다. 이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오늘 아침에는 반드시 중개인을 부르고, 문구류를 주문하고, 손목시계를 고쳐야 한다. 이제 좀 누워야겠다.” (p.910) - 1982년



존 치버 John Cheever / 박영원 역 / 존 치버의 일기 (The Journals of John Cheever) / 문학동네 / 921쪽 / 2016 (1990,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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