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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5. 2024

《애도 일기》롤랑 바르트

이제 어엿해진 불안을 떨쳐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부터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바르트는 주로 잉크로, 그러나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나갔다.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Henriette Binger)는 1893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스무 살 때 루이 바르트(Louis Barthes)와 결혼했고, 스물두 살 때 어머니가 되었고, 스물세 살 때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그녀는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p.7~9, 나탈리 레제의 <서문> 중)




  《애도 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작성한 메모를, 메모의 내용 그대로, 책으로 엮은 것이다. 롤랑 바르트 사후에 그 작업을 하였으므로, 롤랑 바르트의 어떤 의도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첫 번째 메모는 1977년 10월 26일에 작성되었고, ‘결혼의 첫날밤. 그러나 애도의 첫날밤인가?’라는 내용이다. 다음 날인 10월 27일에는 여러 개의 메모가 작성되었고, ‘누가 알겠는가? 그 어떤 귀중한 것이 이 메모들 안에 들어 있을지.’는 그 중 한 메모의 내용이다.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빈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p.47, <11.5> 중)


  부모님이 모두 사이좋게 여든을 넘으셨고 나와 아내도 보기 좋게 쉰을 넘어 버렸다. 언젠가는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여실히 분리되어야 하는 상황을 눈앞에 그려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간혹 부모님의 계속해서 초라해져만 가는 현실을 목도해야 할 때, 나는 동시에 나의 늙어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나는 또 곧바로 수척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p.90, <12.8>)


  어느 고즈넉한 휴일 낮의 일화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입원 절차를 밟았다. 보호자의 상주를 불허하는 병동이어서, 이불까지 준비하였던 엄마는 집에 머물러도 무방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는 아버지의 신발이 후줄근하다 타박을 했는데, 입원실에서는 슬리퍼를 신어야 할 텐데 그게 뭐 대수냐고 아버지와 내가 받아쳤다. 이미 연세대의 후문으로 차를 몰아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저 앞에서 좌회전, 이라고 거들었다. 네, 하고 계속 운전을 했다. 


  “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은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p.189, <1978.8.1.>)


  입원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남동생에게는 엄마의 저녁을 챙겨드리라 부탁했다. 저녁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동생 내외 대신 조카와 함께 저녁을 했다고 자랑을 하셨다. 이것저것 배달 음식을 먹고 난 다음, 조카는 피곤하다며 소파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 아버지의 조직 검사가 있는데, 엄마가 보호자로 가겠다, 하셔서 그리 하시라, 하였다.


  “마망의 일주기. 종일을 위르트에서 보내다. 위르트, 이 텅 빈 집, 공동묘지, 또 하나의 새로운 무덤. 이 무덤은 그녀에게 너무 높고 너무 크다. 마지막에 마망은 그토록 가냘프고 작았었는데, 조여든 가슴은 풀리지 않는다. 나는 완전히 메말라서 마음 속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일주기의 상징성, 그런 건 내게 없다.” (p.218, <1978.10.25.>)


  《애도 일기》에서 현대 사상가의 깊은 철학적 애도의 감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때때로 날것인 메모들이 보이는데 헐벗어 보일만큼 빈곤한 감정에서 멈추기도 한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는 여든 네 살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마망이라고 부르며 어쨌든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예습이랄 것도 없는데, 늙어감이나 죽음이나 애도와 관련한 책을 드물지 않게 읽고 있다. 이제 어엿해진 불안을 떨쳐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 김진영 역 / 애도일기 (Journal de deuil) / 이순 / 280쪽 / 2012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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