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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19. 2024

《행복한 책읽기》김현

당신의 책읽기는 언제나 행복합니까?

*2006년 10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가끔 혼자 묻고는 한다. 너의 책읽기는 언제나 행복하니? 물론 변덕스러운 성격에 딱 맞도록 어느날은 코끝이 방바닥에 닿을 정도로 심하게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고, 또다른 날에는 부채질만큼이나 시원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하지만 책읽기도 버릇이라면 버릇인지라 테크노바에서의 광란의 밤처럼 심하게 고개를 저었다해도 며칠을 견디지 못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혹자는 이러한 책읽기가 밥먹듯이 술을 마셨던 젊은 날의 후유증으로 삼일을 내리 술마시지 못하는 건강의 악화와도 관련이 있다고도 하지만 - 그러니까 매일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몸뚱이를 가진 주제에 책이라도 읽어야지 하는 것 아니냐는 - 그때마다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지금도 누군가 술값만 내준다면 삼일이 아니라 일주일도 내리 마실 수 있노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그가 사과의 의미로 술을 사줄 때까지 붙잡고 늘어진다.)


  그리고 이처럼 책읽기에 대한 의문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난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꺼내들고는 한다. 바로 지금 처럼...


  꼬질꼬질 때가 잔뜩 앉은 책의 머리즈음을 휙 불었더니 시커먼 먼지가 폴폴 날린다. 1993년 신촌문고에서(책의 맨 뒷장에 신촌문고라고 쓰여진 표딱지가 붙어 있다. 그때는 그렇게 바코드를 통해서가 아니라 손으로 죽 뜯어낸 나머지 부분으로 책의 수량을 계산했을 것이다.) 학교 선배인 백영이 형이 회사에 가는 길에(책의 맨 앞장에 이렇게 쓰여있다. 그런데 왜 그는 회사에서 오는 길도 아니고 가는 길에 책을 사주었을까. 그리고 대형 서점이 문을 여는 시간에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그가 제대로 출근을 하긴 한 것일까, 나중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사준 책으로 되어 있다.


  사실 『행복한 책읽기』는 내게 각별한 책이다. 난 이 책을 읽고 내 일기쓰기의 전범을 삼고자 노력했으며, 아직도 이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김현처럼 그것이 책으로 묶여 인세를 제공하는 상품이 되지 못할 것의 거의 확실시되지만 난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 1990년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한 평론가가(라고 하기에는 그의 족적이 무시무시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 일기쓰기의 행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 대부분은 평론가인 그가 읽은 책에 대한 간략한 감상으로 채워져 있고, 아주 가끔 사회 현상에 대한 시평과 자신의 매우 사적인 기록들이 등장한다. 그는 김윤식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런대로 선후배제위의 문학 작품들을 꾸준히 읽고, 그 책의 내용을 단상으로 뿜어낸다. 가혹한 대신 짧게 언급을 한다거나, 과장된 칭찬대신 조금 길게 언급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김현의 다른 평서들을 향해 짙게 품었던 현학적 거부감은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눈녹듯 사라지기 마련이다.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절대 진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은근짜하게 사람을 감동시킨다. 게다가 죽음의 순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속내를 바라보는 것도 을씨년스럽되, 추레하지 않아서 좋다. 비범하면서도 평범해보이도록... 그의 일기는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다.


  나는 어쨌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내 책읽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아니 그의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책읽기를 기록해야겠다는 강력한 동인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의 책은 한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는 행위가 한없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고, 그의 책은 또한 그것이 언제 사그러들지 모르는 한낱 인간이 해야할 초보적인 죽음의 연습이라는 사실 또한 일깨워주었다. 그는 지극히 도도하고 유려한 문장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문학평론을 쓰면서 동시에 똑같은 문장으로 제 임박한 죽음을 예감하면서까지 멈추지 않았던 삶에의 애착을(책읽기의 행위를 통해 구현될 수밖에 없었던)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제 소명 이상을 전달했다.(물론 그가 좀더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섞인 절망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쯤되고보니 책읽기의 행복감 운운한 처음의 내가 비루해지고 만다. 평론가도 아니며, 작가도 아니고, 출판사의 직원도 아닐 뿐더러, 하물며 인쇄소의 종이나르는 시다쯤도 되지 않는 내가 그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책을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드러누워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게다가 나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지 않은가.


  각설하고, 지금 당신의 책읽기가 행복한 것일까, 의문이 들고 있다면 다시 한번 들추어 때묻은 책장을 넘겨보시거나,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초판 몇쇄인지를 재밌게 확인하면서 구입하기 바란다. 유효기간이 지난 소개 책자들을 사서 볼 필요는 없다. 그저 그가 그 책들을 향해 보내던 건조한 애틋함을 조금 덜어 당신의 것으로 삼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시금 당신의 책읽기가 제공하는 행복감에 빠져들 드시라...



김현 /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 문학과지성사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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