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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Oct 03. 2024

《겨울 일기》폴 오스터

우리 모두를 향하여 열려 있는 평범한 비범함의 세계가 복기되는...

  재기로 가득해 보이는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며 (작가는 《겨울 일기》 곳곳에서 실제의 삶에 주석처럼 깃들어 있는 자신의 소설을 괄호로 넣어서 부연해준다) 그의 인생을 읽는 일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라고 쓰려다보니 딱 맞추어서 홀연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출난 작가에게 신뢰를 보내기에는 충분한 소설이다. 그가 이토록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더더욱...




  <내 아내의 남편을 찾습니다> (《뉴욕 3부작》중의 한 편이다)로 시작된 폴 오스터 읽기도 꽤 연한이 깊어졌다. 그리고 《겨울 일기》는 그의 나이 예순 네 살이던 2011년에 씌어져 2012년에 출간된 것이다. 폴 오스터 식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 서두가 마음에 든다. 매우 뛰어난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할 때, 서두 뿐만 아니라 글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p.7)


  소설에서 폴 오스터는 당신이 되고, 폴 오스터는 그러한 자기 자신인 당신의 (위의 문장을 염두에 둔다면 그러니까 그 당신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될 수도 있겠는데...) 전 생애를 꽤나 디테일하게 훑어나간다. 자신이 머물렀던 스물 한 개의 주소를 비롯하여 자신이 만났던 많은 여인들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빼놓지 않는다. 때로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 힘든 것일지라도 망설이지 않는 것 같다.


  “당신은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문득 향수에 젖어 지금보다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준 것만 같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데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당장 그만두고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을 볼 때와 같이 그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당신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본질적으로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p.195)


  기쁜 것은 기쁜 것대로 슬픈 것은 슬픈 것대로 그리고 수치스러운 것은 또한 수치스러운 것대로 작가는 바라본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그의 진실된 토로를 막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나이 들었음을 자랑스러워하지도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시절에 대해 불필요한 향수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본질적으로 한결 같았던 하나의 인간이었고 현재도 그러한 자신을 토로할 뿐이다.


  “과거의 실패, 당신의 오판,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무능력, 충동적이고 잘못된 결정들, 감정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 비추어 보면 당신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신기한 일이다. 당신은 이렇게 예상을 뒤엎고 행운이 찾아온 이유를 알아내려 애썼지만 아무리 해도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212~213)


  그러한 작가의 인생에 최초의 그리고 영원한 안정감을 주는 것은 첫 번째 결혼 생활에 실패한 이후 만나게 된 아내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불안정성의 총합과도 같은 자신의 곁에 여전히,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있는 아내를 영문을 알 수 없는 지속적인 행운으로 여긴다. 이와 함께 첫 번째 결혼 실패 후 친구의 친구 덕에 구경하게 된 무용 공연 리허설에서의 경험은 일종의 폴 오스터의 진정한 에피파니로 설명되는 부분이다. 그저 그런 글을 써내던 별 볼일 없던 작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기며 방황하던 그를 구해낸 것은 바로 그 일면식도 없는 무용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당신 안에서 무언가가 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세계와 말 사이의 균열 속으로, 인간의 삶과 인간 삶의 진실을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우리의 능력을 갈라놓는 틈 속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텅 빈 무한한 허공 속으로의 이런 갑작스러운 추락에 당신은 자유와 행복의 감정을 가슴 가득 느꼈다. 공연이 끝났을 때에는 당신은 더 이상 꽉 막힌 상태가 아니었다. 작년부터 당신을 짓눌렀던 의구심 때문에 더는 괴로워하고 있지 않았다. 당신은 더치스 카운티에 있는 당신의 집으로, 결혼이 파탄을 맞은 후 당신이 잠을 자던 작업실로 돌아왔다. 다음날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p.240)


  재기로 가득해 보이는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며 (작가는 《겨울 일기》 곳곳에서 실제의 삶에 주석처럼 깃들어 있는 자신의 소설을 괄호로 넣어서 부연해준다) 그의 인생을 읽는 일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라고 쓰려다보니 딱 맞추어서 홀연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출난 작가에게 신뢰를 보내기에는 충분한 소설이다. 그가 이토록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더더욱...



폴 오스터 / 송은주 / 겨울 일기 (Winter Journal) / 열린책들 / 253쪽 / 20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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