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고 똑똑하며 변칙적인 미스터리의 흥미롭고 재미있는 전개...
“파리 9구, 둘스 블레트 가 5번지. 평화로운 거리에 위치한 한 중산층 아파트, 평범한 사람들이 둥지를 튼 익명의 건물...”
소설은 이 건물을 중심으로 일어난 100일여의 기록물에 다름 아니다. 주로 사건은 5번지의 건물에 살고 있는 라디오 작가인 막스 크른누루와 6번지에 살고 있는 계란 예술가인 으젠 플뤼슈의 일기를 통하여 전개되고, 5번지 건물의 관리인인 라두 부인이 요양원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그의 엄마를 향하여 보내는 편지와 6번지 건물에 살고 있는 에로 소설 작가인 라냐르 몽냐냑의 소설 내용들이 아주 간혹 엉뚱한 향신료처럼 뿌려지는 형국이다.
스토커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곧바로 그들의 집에 세를 들어온 막스 크른누루와 으젠 플뤼슈가 서로를 향하여 드러내는 적개심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아보자면 이들은 서로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음과 동시에 서로를 향한 감시의 시선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 기름기로 번들거리던 시선은 브뤼숑 부인이 애지중지 하는 강아지 엑토르의 사고사라는 작은 불꽃에 의해 점화되고 만다.
“... 소설가는 불안에 재갈이 물린 사람이다. 그는 이 무시무시한 질문에 끊임없이 부딪힌다. ‘내 이야기에는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 그 문제에 조금이라도 지배당하게 되면, 그는 야망을 한정시키고, 생각을 검열하고, 상상력을 거세시키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나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짱 좋게도 독자들에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설가를 추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쉽게 쓴다며, 전혀 사실임직하지 않다며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모두가 언젠가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어느 순간 5번지와 6번지의 두 적대자 이외에 은근슬쩍 끼어드는 제3자의 손길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신의 손이라도 되는 듯,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 미스터리 소설을 조작하는 또 다른 손의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은 곧바로 브리숑 부인의 엉뚱한 행동들, 5번지 건물의 관리인인 라두 부인의 아들 브뤼노가 보이는 엉뚱한 행동들, 그리고 짜깁기 영화를 만드는 자모라씨를 비롯해서 6번지 건물의 관리인인 과다 노출 폴랑타 부인과 포르노 소설을 쓰는 라냐르 몽냐냑이라는 세입자들을 쫓아다니느라 금세 잊혀지고 만다.
“... 어떤 사람이 무작위로 당신을 골라서 당신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기로 작정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그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하찮다 할지라도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각 존재는 우리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수습 조물주는 너무나 단조로운 삶에 약간의 양념을 넣으면 훨신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 이웃을 서로 죽일 듯이 미워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상황을 조장하는 것으로, 소문을 퍼뜨리거나 익명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의구심이 사라질만 하면 한 번씩 툭 튀어나오는 제3의 손길이 있으니 독자들의 물 흐르듯 전개되는 독서를 톡톡 건드려댄다. 도대체 이 자는 누구인거야? 작가 자신인 거야? 그러니까 소설 속의 범인을 지목해줄 신의 손인 거야? 자꾸 살해를 당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미궁 속으로 빠질 것 같은 사건은 자꾸 수면 위로 떠오르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늪은 점자 그 질척임의 강도를 높여가는데 소설의 후반부까지도 범인은 좀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니 독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기만 하는 것이다.
“서스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미스터리 속에서 해답을 모색했던 독자에게 결말 부분에 가서 밋밋하고 엉성한 설명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보다 불쾌한 일은 없다... 동시에, 조립에 능한 작가에게는 서스펜스를 유지해가며 줄거리를 전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가 결말 부분에 안배해둬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전은 그의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드디어 우리는 ‘식은땀을 흐르게’ 만드는 ‘반전’과 맞닥뜨리게 된다. 부처님 손바닥인 듯 작가가 품고 나아가던 등장인물들과 그 등장인물들의 배후, 그리고 끊임없이 힌트를 던지며 독자를 유혹하던 소설가(라고 불러야 하겠지)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 오호 장탄식을 뿜어내게 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익명들, 그 익명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불신의 결과를 이처럼 유머러스하고 치밀하게 보여주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전개에 튼튼한 반전까지, 갖춰야 할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다.
J.M.에르 / 이상해 역 / 개를 돌봐줘 (Prenez soin 여 chien) / 작가정신 / 345쪽 / 2007, 201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