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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기리노 나쓰오 《일몰의 저편》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향하여 제기되는 또다른 물음의 시작점...

  마쓰 유메이 (본명 마쓰시게 간나)가 쓰는 소설은 흔히 성애 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장르의 것이다. 마쓰 유메이, 나는 작년에도 한 권의 소설을 냈는데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 나는 ‘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를 모두 포함시킬 정도로 공을 들여 소설을 썼다.


  “... 우매한 자들이 소설을 샅샅이 뒤져서 편향 혹은 변태라 판정하고 작가의 성격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요양소, 그리고 정신감정. 그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붕붕 소리를 내며 도는 풍력발전 터빈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느낌이 들며 신경이 마비될 것 같았다.” (pp.72~73)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가 보낸 소환장을 받게 된다. 내용인즉슨 내 소설을 읽은 독자 중 누군가가 내 소설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출석을 요구하였으나 내가 회답을 하지 않아 다시 아래의 기일에 요청한 장소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출두 장소인 바닷가 도시에서 ‘약간의 강습’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숙박 준비물도 부탁한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배가 고프다. 화장지가 줄어들고 있다. 전화통화가 안 된다. 메일도 라인도 안 된다. 인터넷도 쓸 수 없다. 감시당하고 있다. 동료와 이야기도 못 한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못 나간다. 이렇게 모든 자유를 빼앗긴 것을 알고 나면 사람은 순종적이 되는 걸까. 어제는 명치를 얻어맞고 구속복에 갇힌 여자를 보며 그토록 격분했는데 오늘의 나는 이미 활력을 잃은 상태다.” (p.158)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는 바닷가 도시에 있는, 외부와 단절된 장소의 요양소에 감금당하게 된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작가들도 존재하는데, 그들과의 교류는 철저히 막혀 있다. 식사 시간에도 겨우 눈만 맞출 수 있을 뿐이고, 샤워 시간도 개별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다만 절벽의 숨겨진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A45와 (나는 이곳에서 이름이 아닌 B98로 불린다) 몇 마디의 말을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뇌 과학자 소마를 달갑게 않게 여기는 다다는 아키미와 불륜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다의 아내에 대한 질투를 숨기지 못하는 아키미. 휴일이면 성인업소에 드나드는 니시모리. 아무리 봐도 시골 아줌마로 보이는 가니에가 숨은 실력자이며, 난폭한 오치는 문학적인 인간 같다는 뜻밖의 결말. 여의사 소마는 무려 ‘시치후쿠진하마의 멩겔레’란다. 우리 가운데 누구를 실험 재료로 삼을지를 선별한다고.” (p.234)


  요양소의 소장은 다다이고, 다다와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은 정신과 의사인 소마이다. 입소 후 몇 차례 직원들과의 대립으로 벌점을 받은 나는 특별한 관리 대상이 된다. 나는 또한 베갯잇 안에서 이 방을 사용한 전임자의 메모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만약 작위적인 것이라면, 누군가가 내게 제공되기를 원하는 정보일 뿐이라면...


  “이때에 이르러서야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뇌를 산산이 부숴 버리면 스튜에 어울릴지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351)


  소설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다만, 그 논쟁의 한가운데로 (새로운 우파의 득세에 일조하였다고 여겨지는) PC함, 정치적 올바름을 끌어들이는 것이 적당한지는 의문이다. 소환장을 보내고 요양소를 운영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혐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PC함까지를 억압의 선상에 놓는 것에 동조할 수도 없으니... 



기리노 나쓰오 / 이규원 역 / 일몰의 저편 (日没) / 북스피어 / 367쪽 / 20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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