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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기리노 나쓰오 《그로테스크》

이렇게 우리들 모두는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증명될 지니...

  www.kirino-natsuo.com 을 출처로 하는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소설 《그로테스크》는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연원으로 한다. 작가는 피해자가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근무하는 엘리트 여성이 실은 밤거리의 매춘부였다’라는 사실에 열광하는 매스컴에 소설가의 방식으로 반기를 든다. 작가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고, 이를 위해 ‘나’와 아름다운 여동생 ‘유리코’를 ‘가즈에’의 주변부 혹은 또 다른 중심부로 만들었다.


  “유리코보다 내 머리가 훨씬 좋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두뇌로는 남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두려워할 만한 미모의 소유자라는 것만으로 유리코는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코 덕분에 나도 어떤 재능을 타고날 수 있었습니다. 그 재능은 바로 악의惡意입니다. 뛰어나기는 하지만 아무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는 재능...” (p.82)


  실제 사건의 피해자는 소설 속에서 가즈에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유리코라는 인물과 맞닥뜨려야 한다. 유리코는 스웨덴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모든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끄는 아름다움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다만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었지만 나는 유리코와 다르다. 혼혈이라는 사실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지만 유리코와 비교가 되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카알은 나를 밀어젖히듯이 몸을 떼어내고는 괴로운 듯 중얼거리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렇게 황홀한 일인데, 무엇이 나쁘다는 것일까? 나는 회한에 사로잡힌 카알이 갑자기 현실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아서 왠지 불만스러워졌다. 하지만 카알도 마찬가지로 실망하고 있었다. 나는 카알의 눈빛 속에 있던 경외나 동경이 관계한 뒤에 사라진 것을 느꼈다. 나와 관계한 남자들은 누구나 다 뭔가를 상실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때였다.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새로운 남자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내가 창녀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p.193)


  소설은 유리코와 그렇게 곧바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나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유리코를 향하여 혹은 유리코를 추앙하는 시선을 향한 악의를 가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Q라는 명문 여고를 차례대로 다니게 되지만 유리코는 졸업을 하지 못하였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살지도 않았다. 그리고 유리코는 서른 살이 넘은 어느 날 목숨을 잃은 매춘부 피해자가 되어 내 앞에 당도한다.


  “나는 유리코와 달라서 남자라는 생물은 딱 질색입니다. 남자와 서로 좋아한 일도 없고 서로 끌어안을 일도 없기 때문에 발효도 부패도 하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네, 나는 바짝 건조해 버린 수목입니다. 유리코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으니 오랜 발효를 거쳐서 부패한 겁니다. 미쓰루는 결혼하면서 길을 잘못 택해 부패하고, 가즈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생활에 없었던 윤기를 갖고 싶어 부패해 멸망한 것입니다. 내 말이 틀렸나요?” (p.518)


  당시 살인자는 잡히지 않았지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또 다른 매춘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피해자가 바로 가즈에이다. 가즈에는 나와 함께 Q 여고를 다녔고 졸업하였으며 Q 대학을 거쳐 살해당하는 그날까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두 피해자, 유리코와 가즈에의 기록이 내게로 오게 되고, 나는 독백과 함께 이 기록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여동생, 유리코의 비극적인 일생. 그리고 일본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사회를 구현해 낸 명문 Q여고에서의 나날. 동창생인 사토 가즈에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 그리고 미쓰루와 기지마 다카시의 영광과 좌절. 다른 나라에서 밀항해 기이하게도 유리코와 가즈에를 조우하게 된 장제중의 악당 인생.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황을 전하기 위해서 입수한 수기나 일기, 편지 등을 종합해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얘기를 계속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아까부터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습니다. 왜 나는 여러분을 이해하게 하려는 것일까요? 나는 도대체 여러분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은 것일까요?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리코도 가즈에도 미쓰류도, 다카시도, 장도, ‘나’라는 인간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유리코의, 가즈에의, 미쓰루의, 장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검은 잔설殘雪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pp.730~731)


  결국 작가는 사건의 피해자(유리코와 가즈에)와 가해자(일본으로 넘어온 중국인인 장제중) 모두에 섞여 있는 우리들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그녀들을 죽였다면 나는 악의라는 방식으로 그들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나는, 내가 관찰하였던 그녀들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렇게 우리들 모두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증명된다.



기리노 나쓰오 / 윤성원 역 / 그로테스크 (グロテスク) / 문학사상 / 749쪽 / 2005, 2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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