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슬픔이라고 명명되지만 슬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 크리스티앙 보뱅


  책의 시작에 앞서 실린 문장에서 이미 어떤 기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겠어, 삶은 그렇게 부드러운 것이 아니야, 만만치 않은 곡절이 펼쳐질 것이니 각오해, 한 번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물러설 생각은 하지마, 위로나 연민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뒤돌아서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무엇이든 똑바로 바라보고, 각인된 그대로 인정해야 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질...


  “...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 우울증이 뭔지 아니? 월식 본 적 있어?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달이 마음 앞에 슬며시 끼어드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자신의 빛을 더는 내지 못해. 낮이 밤이 되는 거란다. 우울증은 부드러우면서 캄캄해...” (p.20)


  처음에는 아껴서 조금씩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침대 옆 탁자에서 다른 책에 자리를 내주고, 쌓여가는 책 산의 아래로 밀려 들어갔다가, 한 번씩 붉어진 눈으로 다시 꺼내 읽고는 했다. 요즘의 나의 마음은 꽤 거대한 짓눌림으로 납작한데, 《가벼운 마음》의 여인은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부터 날것 그대로여서 놀랍고, 그 기질 그대로 살아가서 더욱 놀랍다.


  “... 사랑은 바람에 부푼 붉은 천 아래 빛나고, 맨발에 부드럽게 밟히는 톱밥이 깔린 둥근 서커스 천막 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원은 단순하다. 당신이 사랑받을수록 사람들은 당신을 더 사랑한다. 사랑받기 위한 비법은 관계가 시작될 때에 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갈구하지도, 원하지도 말아야 한다. 미친다는 건, 미치는 걸로, 울면서 웃는 걸로, 웃으면서 우는 걸로 자족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결국 광기의 빈터로 이끌리고, 환심을 사는 데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 매료된다. 그 후, 당신은 사랑의 원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남편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당신의 팔을 붙잡고 조용히 사방으로 눈을 굴린다.” (p.27)


  나는 이즈음 더욱 자주 웃는데 그 웃음은 가볍지 못한 것을 안다. 나는 웃는데, 웃는 동안 자꾸 삶의 아니 죽음의 진액 같은 것이 들러 붙는다. 웃어서 크게 부풀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웃는 동안 저기 저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것만 같다. 웃다가 결국 고개를 외로 꺾는데, 이것은 마치 울다가 고개를 돌리는 제스처를 닮았다. 나는 웃고 웃고 또 웃으며 서서히 함몰되어 간다.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이 오거나 안 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이해가 가는가?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 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정도로 해두겠다.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pp.68~69)


  나는 멍한 응시로 시간을 보내며 휴식한다. 나는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삶의 이전이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발견될 것이다. 나는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하여 자꾸 소리친다. 나는 읽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쓰지 않아 생기는 무력감에 속수무책이다. 나는 내가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너무...


  “...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고, 모두 이기심과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우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이 생각 자체는 그리 어리석지 않지만, 그런 생각 뒤에 슬픔이 따라온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진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슬픔에 관해서는 알고 있다. 슬픔은 다른 무엇도 아닌 허구라는 걸...” (p.116)


  슬픔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한 적이 없는데, 슬픔으로부터 훌쩍 멀어져 버렸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거듭되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원래 갖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점차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고 났더니 슬픔이라고 명명되기는 하지만 슬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무언가가 외롭게 남겨졌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바로 그 민망한 무언가와 동행한 채로, 회복 불가능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크리스티앙 보뱅 Christian Bobin / 김도연 역 / 가벼운 마음 (La Folle Allure) / 1984BOOKS / 193쪽 / 1995 (2021) 

매거진의 이전글 기리노 나쓰오 《품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