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잘 기억하는 꿈 시즌과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비꿈 시즌을 번갈아 산다. 한 번 꿈 시즌이 오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꿈을 꾸고 그 꿈을 잘 떠올리는데 지금이 바로 꿈 시즌이다.
얼마 전에는 고양이 들풀이가 나오는 꿈을 꿨다.
어느 오래된 집 처마에 새끼 새들이 고개를 빼고 바깥을 향해 울고 있었다. 그런데 토방 아래에 있는, 아마도 그곳으로 통하는 것 같은 구멍으로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걸 어째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들풀이가 슬그머니 그 구렁이를 따라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욱 발을 동동 굴러야 했는데, 새끼 새들도 새들이거니와 들풀이도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렁이를 따라 들어간 들풀이가 아마도 그 새들의 거처를 지나쳐 바깥으로 통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처마 곁의 구멍으로 스윽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안도하면서 동시에 그렇다면 구렁이는, 이라고 생각을 하는 찰나 들풀이가 나를 향해 입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고, 나는 들풀이의 목구멍에서 표정을 알 수 없는 구렁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꽤 징그러운 장면일 수 있었으나, 나는 사냥에 성공한 들풀이를 향한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가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