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한강으로부터 전염된 노래의 기억...
*2007년 5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랜만에 문학회 선배들을 만났다. 이십대를 오롯하게 바친 그곳에서 형제처럼 오누이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다. 이제 한결같이 사십대가 되어버린 선배들과 1차로 술을 마셨다. 2차로 옮겨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변해버린 학교 앞의 먹자 골목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알콜을 팔지 않는다고 하여 맥주맛 음료수를 마셨다. 선배 누나를 숙소로 보냈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술집을 찾았고 차가운 사케를 마셨다. 다시 몇 사람이 집으로 갔다. 그들을 배웅했다. 우산을 쓰고 조금 걸었다. 학교 근처에 사는 동기를 불러냈고 또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왔다. 아침에 눈을 떴다. 아내한테 혼났다. 아내가 나를 혼내면서 조금 울었다. 이런...)
그렇게 어제 들른 노래방에서 난 김창완의 <독백>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계속해서 같은 멜로디가 느리게 느리게 반복되는 바람에 옆에서 같이 부르던 선배가 짜증을 냈고, 나도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물론 한강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두 번째 챕터인 <귀기울이다>에서 한강은 자신의 지나온 기억과 더불어 떠오르는 노래들을 (그 가사를), 그 기억에 대한 서술과 함께 적어 놓고 있다.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걷다가 / 밤하늘 바라보았소 / 어제처럼 별이 하얗게 빛나고 / 달도 밝은데 / 오늘은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 어느 누가 잠들었소 / 거리의 나무를 바라보아도 / 아무 말도 하질 않네” 한강은 <청춘>을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고 있지만 (물론 어제 노래방에서 이 노래도 불렀다) 내겐 역시 <독백>이다. 읊조리듯 조용조용 어설픈듯 툭툭 내던지는 김창완의 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어느새 가슴에 설움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강을 통해서 난 산울림을 떠올리고 산울림의 노래를 불렀다.
책에는 이외에도 많은 노래의 노랫말이 실려있고, 한강 특유의 조용조용한 문체로 기억되고 있다.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동물원의 <혜화동>, 메르세데스 소사의 <Gracias a la vida>, 정태춘과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노래방에서는 <불행아>를 불렀다)과 같은 노래들을 오랜만에 떠올렸고 혼자 흥얼흥얼 중얼거렸다.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왠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책은 노래들을 이야기하는 두 번째 챕터를 비롯하여, 한강 자신과 음악과의 기이하다면 기이한 인연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챕터인 <흥얼거리다>, 한강 자신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세 번째 챕터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팔레스타인 작가 마흐무드와의 인연을 다루고 있는 (조금 생뚱맞다) 네 번째 챕터 <추신 : 검은 바닷가, 그 피리 소리>, 작가의 말에 가까운 다섯 번째 챕터 <다시, 인사; 새벽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한 장의 CD가 들어 있다. 재주많은 한강은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면서도 10곡의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직접 부르기까지 하고 있다. 정말 부끄러워하는 듯 아마추어의 풋풋함과 솔직함이 묻어나는 10개의 노래가 모두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가 가장 듣기에 좋았다. CD에 실려 있는 곡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01. 12월 이야기
02. 내 눈을 봐요
03. 나무는
04. 휠체어 댄스
05. 추억
06. 새벽의 노래
07. 햇빛이면 돼
08.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09. 가만가만, 노래
10. 자장가
한강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 비체 / 180쪽 / 2007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