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릭한 도시 처녀, 그 내면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라...
살아가는 문제는 항상 복잡한 듯하면서도 단순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만약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듯하면, 생각하기를 그만두면 된다. 반대로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와 같은 질문을 듣게 된다면 일단 모든 행동을 멈춘 다음 잠자코 생각에 잠기면 된다. 물론 생각이라는 것은 메가 시티의 교통 체증과도 같아서 자신이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것이 요령부득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아침에 슬픈 것은 한낮이나 저녁 때 슬픈 것보다 훨씬 나쁘다. 그나마 저녁에 슬픈 게 제일 낫다. 그때는 곧장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자면 되니까. 그럼 포르노 스타나 축구선수의 꿈을 꾸면서 (젊은 사람들은 보통 그런 꿈을 꾸는 걸로 알고 있다.) 최소한 몇 시간은 슬픔을 잊을 수 있다...”
왠지 독일 작가라고 하면 묵직한 두통을 수반하는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글쓰기를 하지 않을까, 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는다면 그건 큰 오해였군, 이라고 미안해하게 될 것이다. 간혹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의 극심한 정신병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인 카로 헤르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소설은 그만큼 발랄하다. 현대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우울증을, 그리고 그 우울증의 가장 보편적인 보균자일 수도 있는 최근 실연한 도시 처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처럼 톡톡 쏘는 듯한 글을 써내기도 어려울 터이다.
방송 관련된 일을 하던 카로 헤르만은 어느 날 실직을 하게 된다. 뭔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고 느낀 나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심리 치료사인 아네테와의 상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실직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슷한 직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남자 친구 필립과의 관계마저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나는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져서 심리치료사 아네테, 그리고 정신과 의사 클레베를 오가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인다.
“실연의 1단계는 언제 어디서나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단계이다... 대체로 한 달 정도면 끝이 난다... 실연의 2단계는 고통이 좀 둔하게 찾아오는 단계다... 2단계의 지속기간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다. 보통 두 달에서 넉 달쯤 지속된다... 마지막 3단계로의 이행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때가 많다... 아, 난 지금 만족하고 있는 거야. 내 마음속에는 이제 악취나고 추한 게 하나도 들어있지 않아. 지금 여기 있는 난 정상이야... 바로 이 순간 3단계가 시작된다...”
일도 필요하고 남자도 필요한 이 스물 여섯의 주인공에게 실연의 고통을 일거에 날려버릴 비급같은 것은 없다. 그저 자신의 실연을 향하여 짜증내고 실연에 이르게 한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고, 외로움으로 부들부들 떨며, 자신을 이해해주는 주변 사람을 찾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위안을 받으며, 다시금 재기에 성공할 그 날을 향하여 전진한다. 그리고 드디어 과도기의 남자 다비드를 만나게 된다.
“... 다비드, 내 과도기의 남자 말이다.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엄마다. 한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음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다. 그때는 임시로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여서 다음 사람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과도기적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기의 남자 다비드는 도플갱어처럼 나를 닮아 있거나 나보다 한 술 더 뜨는 위인이다. 그래서 섹스와 함께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원하는 나와 섹스는 하더라도 친구 이상은 될 수가 없다는 다비드는 계속해서 충돌하고, 접점을 찾지 못하여 또다른 나의 불안을 양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일 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 우울한 시간들을 보상할만한 남자 막스를 만나게 된다.
이 여자 카로 헤르만의, 혹은 이 여자 카로 헤르만의 내면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현대 사회의 젊은 사랑을 들여다보는 일이나 진배 없다.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안심할 수 없는 카로 헤르만의 사랑은 곧 우리 현대의 젊은 사랑과 씽크로율에서 우월하다. 그러니 소설이 끝난 후, 소설의 결말만큼 카로 헤르만과 막스의 관계가 해피했을 것이냐 하는 것에도 꽤 회의적이다. 우리들 주변의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사라 쿠트너 / 강명순 역 /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Mangelexemplar) / 은행나무 / 355쪽 / 2009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