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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5. 2024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손보미

조금 허무하고 약간 맹랑하게, 이야기를 향하여 진격...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나는 가끔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건 아주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침입이다. 아주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천천히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부지불식간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때때로 무단 침입한 고양이는 정반대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냉정한 방식으로...” (p.18) 열일곱번째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던 한 남자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이 있다.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고양이들의 이야기이고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대관람차」

  호텔 초이선Choisun은 불에 탔다. 방화에 의한 것이었지만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불에 탔고 무너져 내린 호텔에서 죽은 사람들도 있다. P의 남편은 그중의 하나였고 P는 여배우이고,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이제 글로써 P를 돕고, 나의 아내는 P의 남편인 K와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호텔 초이선의 자리에는 P의 행동에 힘입어 175미터의 높이에 25인승 관람차 35량으로 이루어진 대관람차가 들어섰다. P는 나중에 자살했다.


  「산책」

  “...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했다. 눈을 뜨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심하게 감겼기 때문에, 그녀는 이번에는 뭔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점점 더 깊은 잠에 들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잠들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는지 영원히 알지 못했다.” (p.82)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그녀는 그를, 그의 남편을 깨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잠들려고 하지만 잠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이에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부부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다닌다. 거짓보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진실이 아니라 사실을 보여 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것일까...


  「임시교사」

  “그건 착각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었던 잘못된 선택, 착각, 부질없는 기대, 굴복이나 패배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녀는 항상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는 그게 용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버둥거림의 연속이고, 또한 기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pp.115~116) 젊은 부부의 아이를 돌보고, 그들의 먹을 것을 챙기고, 그들의 치매에 걸린 노부모를 챙겼던 P 부인의 조용조용한, 아마도 조용조용했을 평생을 그려보게 된다. 


  「고귀한 혈통」

  ‘패리스 싱어Paris Singer는 186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패리스 싱어의 부모와 패리스 싱어의 이복 형제와 패리스 싱어의 아내와 패르시 싱어의 자식들과 다시 패리스 싱어의 여인들과 다시 패리스 싱어의 자식들과 그 자식들의 자식들에게로 이어진다. 물론 거대한 축약본이다.


  「죽은 사람(들)」

  ‘감마선 폭발’이라는 것이 궁금해진다. 이것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폭발 같은 것인데, 소설 속의 설명에 따르자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천조 개가 30조 년 동안 매일매일 터질 때의 세기와 비슷하고, ’태양이 전 생애를 걸쳐 내뿜을 에너지‘ 정도는 불과 몇 분이나 몇 초만에 내뿜는 정도의 폭발이다. 시계를 잃어버린 내가 그녀와 함께 그녀의 요청에 의해 케이에게 건네야 하는 상자 속의 물건이란 무엇일까... 어떤 불가해함을 향한 불가해한...


  「상자 사나이」

  “상자 사나이는 상자 안에서 죽는다. 그리고 상자와 함께 버려진다. 그리고 상자 사나이는 단 한 사람에게 기억된다.” (p.207) 우편 배달부에 의해 배달되는 상자 사나이는 또 다른 이에게 배달될 운명이다. 상자를 건네 받았던 이는 그 상자를 다시 건네고 난 다음에는 상자 사나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평균 수명 1천 년이 끝나면 그 사후 처리를 부탁할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상자 사나이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을 읽고 하루키의 양 사나이가 퍼뜩 떠올랐는데, 구체적이지는 않다. 


  「몬순」

  발레를 전공했던 여자와 그 여자가 서둘러 선택한 남자가 떠난 신혼 여행의 이야기이다. 그랑 주떼, 그러니까 아마도 발레에서 다리를 벌리고 솟아오르는 비상을 일컫는 용어인 듯 한데, 이야기 끝에 그것이 남았다. 그녀가 배를 타고 느낀 멀미 그리고 그랑 주떼...


  「고양이의 보은 - 눈물의 씨앗」

  소설집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이라는 소설은 소설집 안에 없다. 대신 이번 소설이 두루두루 책에 실린 다른 소설들을 섭렵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작가와 ‘눈물의 씨앗’을 공유하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흘러들어온 어떤 것일는지도...


   그 이야기들이 마음에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상관없이, 이야기의 창조에 능한 작가이다. 이야기의 창조를 좋아해서인지 작가의 소설에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도 흔하다. 미시적인 수다가 필요할 때에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 오히려 거시적인 수다를 떨고자 할 때는 그대로 진격한다. 소 설을 읽다보면 허무하고 맹랑한 일본 사소설 류가 떠오르는데, 그것들의 소소한 장점이 안전하게 체득되어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그것들의 단점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고...

 


손보미 /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 문학과지성사 / 293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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