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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2. 2024

아리 폴만 감독 <바시르와 왈츠를>

애니메이션과 손을 잡고 전쟁 다큐멘터리와 왈츠를...

  어린 시절 이스라엘에 대해 참 요란하게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은 마치 우리들이 몸담고 살아가는 한국의 롤 모델 같은 곳으로 지칭되었다. 나라를 잃고 헤매다녔지만 (우리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긴 기간 동안) 결국은 전쟁을 불사해가며 땅을 되찾았고, 그 이후 끊임없는 유혈 충돌에도 꿋꿋하게 나라를 지켜낸 불굴의 현대사를 지닌 나라라고 교육받았다. 그리고 변변한 자원 하나 없지만 유난한 민족주의로 무장한 채 끈기와 인내의 정신으로 경제적 승자로 우뚝 선 나라라고 가히 숭앙되었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민족주의가 다른 민족에게는 얼마나 처절한 피와 눈물을 강요하였으며, (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곳에서 몇 천 년을 지내온 다른 민족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호전적인 유대 정신이 얼마나 오랜 기간 (어쩌면 아직까지도) 유혈의 악순환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도착한 독특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그들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는 지난 1982년 레바논에서 있었던 사브라 - 샤틸라 학살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당시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레바논을 침공하였고, 이들에 의해 레바논이 점령되어 있는 사이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는 아스라엘에 의해 추대된 대통령인 바시르가 살해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들어가 (어쩌면 이스라엘의 엄호 하에)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 실사로 촬영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한 중년 남자가 잊혀진 과거를 취재하고, 20여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아무런 영상 없이 이야기로만 주절댄다면 얼마나 지겨운 영화가 나왔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반드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종종 초현실적이며 기억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파격적인 형식으로 관객들을 환기시킨다. 스물 여섯 마리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개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은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 레바논에서의 학살이 일어나는 동안 레바논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었던 이들은 우리가 흔히 티비에서 볼 수 있는 인터뷰 장면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장면들을 통해 자신들의 기억을 살려낸다.


  “그는 교차로를 건너가지 않았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 춤을 추고 있었어. 적군을 저주하며 거기 영원히 있을 것 같았지. 포격 한가운데에서 왈츠 솜씨를 과시하는 듯했어. 머리 위에 바시르의 포스터가 보였지. 바시르의 추종자들은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복수를 준비했고, 그게 바로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이야.”   



  그리고 이러한 인터뷰의 사이사이 그들의 기억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재현된다. 리얼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통해 더욱 리얼하게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구현한다는 역발상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향해 진격하는 이스라엘 군사 프렌켈이 바시르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할 때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개에게 쫓기는 꿈 이야기를 해서 나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보아즈 레인 부스키라, 나를 상담해주는 정신과 의사인 친구 오리 시반, 네델란드에 살고 있으며 나의 잃어버린 기억의 토막들을 끼워맞춰주는 카미 크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다시금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로니데이즈, 탱크 부대의 책임자 중 하나였던 드롤 하라찌, 당시 종군 기자로 전장을 누볐던 론 벤 이샤이 등이 등장하는 영화는 마지막 순간 실사로 돌아온다. 


  팔랑헤 민병대가 철수한 후 난민촌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그곳에서는 어린 아이를 비롯해 수많은 시체들과 그러한 시체들 사이를 뛰듯 걸으며 울부짖는 여인들을 담아낸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벌어지던 일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스라엘군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사실들이)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온 진실이라도 된다는 듯 실사로 펼쳐지는 것이다.  



  당시의 학살이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나, 이스라엘 참전 군인들 또한 상처를 입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변명으로 읽히기도 한다지만 영화가 주는 울림은 심상치 않다. 되풀이되는 홀로코스트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개개인으로 구성된 인류 전체의 기억 상실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어두운 힘을 지닌 것, 그러니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 모두가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지는 너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기억할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 아리 폴만 감독 / 요나 굿맨 애니메이션 감독 / 89분 / 20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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