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 한숨 돌리는 독자들을 향하여 날리는 비수...
조금은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본격적인 미스터리 추리물이다. 책을 읽는내내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고조되고, 실마리가 등장하면서 해결되는 듯 보이던 사건은 다시금 미궁으로 빠지게 되고, 미궁조차 겨우겨우 헤쳐나갔다고 여겨질 조음에는 보기 좋게 뒤통수를 친다. 헐리우두에서 지금 당장 영화화 된다고 해도 괜찮을 법한 좋은 구성이다.
“사람 하나가 무참히 죽어 없어지는 건 그 인생이 맞닥뜨린 숱한 오류와 힘겨운 인연들의 결과지. 아니면 지독히도 운이 없었거나……. 그런데 이번처럼 스무 명이나 죽어 나가는 건, 대체 뭐란 말이야!”
어느 날 한적한 소도시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무 명이라는 사람이 동시에 죽은, 그것도 모두들 반항의 흔적도 없이 총에 맞아 차곡차곡 쌓여진 기이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건 현장 앞에서 경찰들은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사건 발생이 얼마 지나지 않아 FBI가 개입하고, 사건과 관련된 모든 증거물들을 수거하면서 모두들에게 함구령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엽기적인 범행을 일으킨 범인은 의외로 쉽게 밝혀진다. 이 집단살인을 포함하여 수도없이 많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본 보즈라는 이름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한 작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토록 다양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 색다른 유형의 범죄자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알리바이 때문에 범인을 잡아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또다른 희생자가 우리들 앞에 나타나게 된다.
“...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도 내리기 전에 알리바이부터 만들어 놓는 인간이라고요. 우선 자기한테 안전한 상황부터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걸 출발점으로 삼고 나서야 누굴 죽일 건지, 어떻게 죽일 건지 결정해요. 그자의 장점은 절대 다른 보통 연쇄 살인범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피에 굶주려서, 아니면 성욕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그의 살해 동기는 오로지 자신의 책이니까. 소설을 쓰기 위해 사람을 죽인단 말이지...”
그것은 듀리스디어 대학에 이제 막 교수로 임용된 젊은 프랭클린이다. 유명 작가들에 대하여 쓴 에세이 때문에 유명해진 프랭클린은 FBI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범행을 조사하던 셰리든에게 부탁을 받고 벤 보즈에게 접근을 시작한다. 여러 유명 작가들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으로 벤 보즈를 택했다는 사실을 미끼삼아 벤 보즈의 집을 방문하고 그를 자신의 대학에 초청하기까지 한 것이다.
“...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완벽한 알리바이는, 그러니까 제대로 통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변명은…… 범행을 저지른 바로 그날 죽는 거죠!”
결국 본 보즈는 자신을 옥죄어 오기 시작하는 FBI, 그리고 셰리든 총경과 프랭클린 교수를 남겨둔 채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얼마뒤 주검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소설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서 빛을 뿜는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독자들이 믿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작가는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것만 같다. 휴우, 한숨 돌리는 독자들을 향하여 난데없이 비수를 던지는 격이다.
로맹 사르두 / 전미연 역 / 최후의 알리바이 (Personne n'y Echapera) / 열린책들 / 440쪽 / 2006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