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랑한 상상력에 적당한 외피를 둘러 물에 띄우니...
소설의 제목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뭐야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라니, 진짜 그런 오리가 있을 리는 없을 테니 , 그렇다면 이 소설 순전히 가짜로 써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온전히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원래 소설이라는 것이 그렇기는 하지만) 쓰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여하튼 작가는 이 맹랑한 상상력, 그러니까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 먹어버렸다는 설정을 잘도 끌고 간다.
“... 심심풀이 삼아 인터넷에 연재한 글이 예상 밖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고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내 첫 번째 책은 쇄를 거듭하면서 꽤나 팔려나갔다. 작은 행운이 큰 불행의 전조일 때가 있는데, 내 경우가 딱 그랬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에 취해버렸고, 나의 재능을 과신했으며, 그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p.43)
소설은 허구의 성이고 소설가는 그 성의 성주이니, 이처럼 가짜 같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데는 소설가만한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남자,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아나서는 남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소설가이다. 어느 날 자신의 고양이 호순이가 오리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한 노인, 그 노인에게 고용된 남자에 소설가처럼 제격인 직업이 있을까.
“가짜의 가짜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이니까. 가짜에 대한 소설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소설 속이라면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고 구별될 필요도 없을지 모르고. 그런 소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난 재미있을 것 같아. 써봐요.” (p.210)
게다가 이 남자가 소설가여서, 결국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소설은 바로 소설 속 소설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까지 덤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허무맹랑한 소설에 어떤 리얼리티를 부여하기에 적당하기도 하다. 이처럼 소설가에게 이 허무맹랑하게 진짜와 가짜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를 쓰도록 부추기는 여자, 그리고 이 소설가인 남자보다 조금 일찍 노인에 의해 고용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어요. 초심자의 운이었는지, 아니면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며 보수적으로 돈을 운용한 덕인지, 수익률이 제법 나왔죠. 그렇게 계속 잘해나갔다면 지금 이 골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놈의 욕심이 문제였죠... 컴퓨터 앞에 가만히 앉아서 마우스 몇 번 클릭하는 것으로 매일 돈을 벌다 보니까 점점 돈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는 거예요... 돈도 실물이고 진짜인데 그걸 잊어버린 거였죠. 병에 걸린 거였어요. 현실과 망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끔찍한 병.” (pp.70~71)
오천 원도 안 되는 잔고를 가진 소설가 남자와 주식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하여 자신의 원적지인 은평구 불광천 근처로 오게 된 여자와 함께 오리를 찾아나서는 것은 꼬마다. 오리에게 잡아먹힌 고양이의 주인인 노인, 그 노인의 손자이기도 한 꼬마는 되바라진 캐릭터이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자와 여자와 함께 일당 오만원을 받고 불광천 오리 사진 찍는 아르바이트에 합류한다.
『“그럼 네 나이에 돈 벌어서 뭐에 써?”
“돈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을 할 거예요.”
“그게 뭔데?”
“이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하는 거요.”』 (p.92)
소설은 이렇게 세 사람이 노인의 의뢰를 받고 하루종일 불광천을 걸어다니며 오리 사진을 찍고, 저녁이면 노인에게 가서 사진을 건네는 것으로 반쯤 채워져 있다. 물론 진짜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은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 노인이 노망이 든 것인지, 만약 이 노인이 노망이 든 것이라면 고양이의 죽음이 가짜인 것인지 아니면 오리의 고양이 살육이 가짜인 것인지, 우리는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알 수 없다.
“세상 모든 게 통째로 진짜거나 통째로 가짜였으면 좋겠어. 화투장 뒤집듯이 뒤집으면 한꺼번에 진짜도 됐다, 가짜도 됐다...... 그러면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짠지 헷갈리지 않을 텐데......” (p.122)
그러나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오리가 고양이를 진짜 잡아먹었느냐, 하는 이야기에 크게 집착하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가 겹쳐지는 부분, 진짜와 가짜 혹은 가짜와 진짜가 서로를 잡아먹는 부분 같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더불어 90년대 피시통신 게시판에서 소설을 연재하는 것으로 시작된 작가의 프로필도 눈에 띄는데, 군데군데 어색한 문장 같은 것은 어쩌면 그에 기인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김근우 /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나무옆의자 / 271쪽 / 2015